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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 41차례 참가 김해룡 육상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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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 41차례 참가 김해룡 육상연맹 부회장

입력
200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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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다가 죽어. 처지면끝이야.”12일 막이 오른 제47회 부산~서울 대역전경주대회에서는 소구간마다 뒤처지는 선수가 생기면 어김없이 고함이 터져 나온다.

주인공은 김해룡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65). 1956년전남 대표선수로 처음 출전한 뒤 선수와 육상연맹 심판으로 41차례나 대회에 참가한 김 부회장이 역전경주에 쏟는 열정은 남다르다.

“문홍주 이홍열 백승도 황영조 김완기 이봉주 등 한국마라톤과 장거리 스타들이 모두 이 대회를 거쳐갔어요. 한마디로 한국 육상계를 받쳐온 기둥이나 다름없는 대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50년 육상인생이 담겨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김 부회장은 올해도 희끗희끗한 머리를 휘날리며 1,400리에 이르는 대장정 곳곳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언제 처음 참가하셨습니까.

“광주서중 2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는데 전남대 2학년 재학중 선수로 처음 나왔죠. 당시 우리 팀 성적이 중위권에 머물러 안타까운 심정으로 경주를 끝냈습니다.

57년 공군에 입대해 58년부터 공군 소속으로 3년 연속 참가한 뒤 4년간 쉬었다가 65년 육상연맹 심판이 된 뒤부터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나왔습니다. 올해로47회 대회인데 모두 41번 참가했죠.”

-41차례나 참가했으면 2만㎞가 휠씬 넘는 국토 대장정을 한 셈인데.

“국도를 따라 달리는 이 대회를 40년 넘게 참가해서인지 이제는 어느 고개를 넘으면 어떤 마을이 있는지 내 손바닥 보듯 훤합니다.

원래 이 대회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한반도를 종단하고 싶은 통일의 염원을 품고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임진각에서 멈추지 않고 북녘 땅으로도 뛰어가야 하는데….”

-선수로 출전했을 당시를 회고하면.

“56년이었는데도 전쟁의 상처가 채가시지 않아서 경남 밀양 부근의 한 다리가 폭격으로 끊어진채 그대로 있어 선수들과 행사요원들이 모두 배를 타고 건너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워낙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비라도 오면 진창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어요.”

-초창기 대회에는 해프닝도 많았다는데.

“당시만 해도 이렇게 큰 체육행사가 많지 않아서 대회진행이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연도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번은 삼거리에서 좌측도로로 달려야 하는데 일부 선수들이 오른쪽으로 달리는 바람에 나중에 선수들을 찾는 소동이 벌어졌죠.

50년대 후반에는 경기도중 일부 선수가 심판들의 눈을 피해 차량에 연결된 끈을 허리에 매고 오르막길을 달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기록이 취소된 일도 있었습니다.”

-달리기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달리기는 고독한 일입니다. 누군가와 맞서는 스포츠가 아니라 자신과 싸우는 스포츠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매력인 것 같아요.

달리면서 끊임없이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할 때 성취감은 말로 못합니다.”

-부산~서울 대역전 경주대회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이유는.

“이 대회는 마라톤, 장거리선수들이 비교적 짧은 거리를 달리면서 스피드 훈련과 더불어 경험을 쌓기에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이봉주 선수가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을 때에도 꾸준히 참가해서 성실하게 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마디로 한국 육상의 기둥과도 같은 대회죠.”

인터뷰를 마친 후 다시 소구간으로 향하던 김 부회장에게 이 대회에 거는 바람을 묻자 비수를 찌르는 대답이 나왔다.

“50, 60년대에는 연도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바람에 대회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는데 요즘은 관심이많이 떨어졌어요.

마라톤 금메달이 갑자기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한국육상에 씨를 뿌려온 이 대회에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김해룡부회장 약력

▦1936년 전남 광주생

▦1951년 광주서중 2학년 때 육상 시작

▦1956년 전남대

▦1958년 전국체전 마라톤 우승

▦1965년 육상연맹 심판

▦1970년 육상연맹 총무이사

▦1988년 서울올림픽 육상담당 경기운영 부장

▦2001년 육상연맹 경기담당 부회장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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