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11월14일시 전문지 ‘시인부락‘이 창간됐다.지난해 작고한 미당 서정주가 주재한 ‘시인부락’은 그 해 12월 제2호를 내고 종간했으나, 함형수 김동리 오장환 김광균 김달진 등 쟁쟁한 문인들이 동인으로 참여했다.
또 그 두 호에 실린 시들 가운데는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남게 된 작품들이 여럿 있다.
창간호에 실린 함형수의‘해바라기의 비명’은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마세요”로 시작하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노래’를 닮았다. 그러나 그 격은 영국 여성시인의 작품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 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창간호에 실린 작품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서정주의 짧은 시 ‘문둥이’일 것이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이 시는 생명의 꿈틀거림에 푹 빠져 있던 청년 서정주의 시세계를 압축하고 있다.
특히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울었다”는 구절은 이 시인이 젊은 시절부터 ‘언어의 연금술사’였음을 보여준다. ‘시인부락’ 제2호에 실린 ‘화사(花蛇)’는 서정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 마지막 연은 이렇다.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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