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이 수도카불을 포기하고 나부 칸다하르로 퇴각함에 따라 북부 동맹의 카불 입성은 단 한발의 총성 없이 이뤄졌다.AP와 AFP등 외신들에 따르면 탈레반군은 12일 밤부터 13일 새벽까지 야음을 틈타 1996년부터 점령해온 이 도시를 '질서 정연하게'게 빠져나갔다. 퇴각 직전 탈레반은 카불 외곽 6km까지 진격한 북부 동맹군의 공격에 대비,도시 진입로에 병력과 탱크를 배치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카불의 환전상들은 그러나 "탈레반군이 떠나면서 수 백만 달러와 함께 컴퓨터,카펫,차 주전자 등 모든 물건을 가리지 않고 빼앗아갔다"고 말했다.
새벽의 정적을 깬 것은 수도 입성을 축하하기 위해 쏘아대는 북부 동맹군의 자동소총 소리였다.카라슈니코프 소총과 로켓 유탄발사기로 무장한 선발대 50~60명이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카불로 진격했을 때는 탈레반은 이미 도시를 떠난 뒤였다. 아프간기와 전사한 아프메드 샤 마수드 장군의 사진을앞세운 병사들은 도시 곳곳을 돌며 수색 활동을 펴거나 버려진 무기를 회수했다.탈레반 병사 몇 명이 북부 동맹에 끌려가기도 했는데 목격자들은 "이들이 동료들의 퇴각을 모른 채 아침까지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유니스 카노니 북부동맹 내무부 장관은 "잔당소통과 약탈방지를 위해 치안병력이 먼저 카불에 들어갔다"며 "주력군은 카불 외곽에 대기중"이라고 말했다. 북부 동맹측은 이날 경찰부대 병력 5,000명을 카불로 추가로 보내 치안유지 활동을 펴도록 했다.
카불 시내는 대체로 평온을 유지했으나 일부에서는 약탈 행위가 발생하기도 했다.현장의 취재 기자들은 일부 주민들이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선풍기,냉방기,담용 등을 들고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탈레반의 퇴각과 북부 동맹의 입성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종족에 따라 엇갈렸다.카불 북쪽 거리에서는 주민들이 늘어서 북부 동맹군을 환영하기도 했으며,터번 대신 간편한 모자를 쓴 주민들도 보였다. 타지크족이 모여 사는 북쪽의 카이르카나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그들이 왔어요"라며 기뻐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파슈툰계 주민들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북부 동맹이 저질렀던 학살과 약탈을 상기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까지 오는 수염을 기른 한 노인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오직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할 뿐이다"고 불안해 했다.
김승일 기자
■카불은 어떤 도시인가?
북부동맹의 카불 장악은 미국의 공습이 시작된지 1개월 여만에 아프가니스탄의 세력구도가 뒤바뀌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 20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아프간의 수도는 5번이나 주인을 바꿨지만, 구 소련군은 물론 아프간의여러 세력들이 한결같이 카불 점령을 승전의 표식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이 카불에 친소정권을 수립하고도 패퇴했듯이, 아프간에서 수도함락은 전쟁의 시작일뿐 종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카불은 아프간 건국 시조인 아흐마드 샤의 아들 티무르 샤가 1774년 수도로 정한 이후 한때 ‘아시아에서가장 훌륭하고 깨끗한 도시’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조로아스트교와 불교의 동서 전래가 이루어졌으며 각국 상인들이 드나들던 교통 요지 카불은 기나긴 내전 동안 유혈로 점철돼 지금은 긴장만 감도는 어두운 도시로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1973년 쿠데타 전 여러 민족이 조화롭게 지냈던 자히르 샤 전 국왕 통지기를‘황금시대’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78년 사회주의자 누르 무하마드 타라키의 집권과 이듬 해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으로 깡그리 사라졌다.
성전을 선포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과 소련군은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지역과 민족에 기반한 온갖 분파주의를 조장했다.
92년 나지불라 정권을 무너뜨리고 카불에 입성한 무자헤딘은 현 북부동맹과 파슈툰으로 갈라져 3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유혈 다툼을 계속했다.
96년 탈레반이 카불의 주인이 된 후 유혈은 사라졌지만 인권 유린 정치가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다.
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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