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선 서울대 교수는 얼마 전 한 대담에서 미국 테러사건 이후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AT(After Terror) BT(BeforeTerror)라는 표현을 소개했다.테러사건의 충격이 여러 면에서 크고 깊어서 시대 구분을 테러 이전과 테러 이후로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는 것이다.
또 김상환 서울대 교수는 한국일보 기고에서 테러의 현장에서는 인류가 아직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 있은 후에야 평화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 파장의 깊이를 진단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얼마나 걸릴지 어디서 끝날지를 단정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술적, 군사적으로 어려운 전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쟁에 엉킨 앞뒤 사정들을 어렵게, 무겁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두 교수의 견해도 바로 이를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전쟁 개시 이후만 해도 더욱 모호해진 점들은 여러 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의 정권 붕괴가 전쟁목표의 달성일지,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면 테러는 박멸되는 것인지, 또 수 백만의 난민과 주민희생은 누가 책임질 일인지, 아니면 전쟁이 치러야 할 불가피한 대가인지 등의 질문들만도 단답으로 알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테러 이후의 세계를 가늠하는 데 더 복잡해지는 것은 전쟁을 위한 국제 연대의 동기와 성격이다. 미국은 광범위한 국제연대를 확보하고 있지만 전쟁양상에 따라 연대에 금이 갈 소지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이 연대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의 상호 주적(主敵)관계가 완전 해소됐음이 드러나고, 이로써 과거 냉전의 잔재가 일소됐음을 확인했다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테러냐 반테러냐를 사이로 한 하루 아침의 변화는 여전히 어지럽다.
과거에 동맹이나, 친소관계를 결정하던 인권, 민주주의,독재, 이념 등의 용어는 새로운 연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냉전 시대 미국이 주도하던 반소(反蘇)동맹의 질서가 10여년 만에 반테러 동맹으로 재등장하면서 만사는 불문에 부쳐졌다.
동맹의 최일선 국가인 파키스탄이 테러직전 미국에 의해 견제나 제재 대상으로 다루어졌던 점은 표변한 새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맹질서는 얼마든지 편의적으로 재편될 수 있는 것이고, 연대를 지탱해야 할 도덕적, 정신적 명분이나 가치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하다.
빈 라덴은 테러의 이유를 미국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반미가 그 이유이지만 그의 반미의 방식은 이슬람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특히 중동지역의 반미주의는 걸프전 이래 지난10여 년간 뿌리가 깊어지기만 했다.
빈 라덴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수단에서 거부되고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했지만 그 때문에 중동 국가가 아닌,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테러가 극단적 반미의 폭력적 표출이었다면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반미주의를 다루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빈 라덴의 폭력은 미국의 대 이스라엘, 대 중동정책 과정에서 누적돼 온 반미주의의 병적 변종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어디까지나 중동과 이슬람의 반미토양에 자리잡고 있다.
전쟁의 종착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이유이자, 시대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떤 학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과 세계를 생소하고 난해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가 텍사스 한복판에서 잔뼈가 굵어 복잡다단한 국제문제를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했다.
모호한 시대에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때 오는 혼돈과 불안을 리더십이 정리해 주어야한다. 언제,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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