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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6남매 키워낸 부모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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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6남매 키워낸 부모님의 힘

입력
2001.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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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정 모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그런지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모습으로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뱀에 대한 기억이다.어른들은 그걸 뱀이라고 부르지 않고 '업'이라고 불렀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업은 한 집안의 살림을 보호하고 늘게 한다는 동물이나 사람을 의미한다.)

집집마다 한 마리씩은 있다는 구렁이 말이다. 뱀이라고 부르든 업이라고 부르든, 뱀이라면 그림으로 보는 것조차 싫어했던 나로서는, 집안 어디에선가 기어 나온 그것을 보는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말로만 듣던 업이 정말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누렇고 길고 번들거렸다.

그토록 징그러운 것과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었다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이상 더는 그 집에서 못 살 것 같았다. 그 놈을 집 밖으로 아주 멀리 쫓아버린다면 몰라도.

그러나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그 업을 대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태도 때문이었다.

막내 아들이 놀라 기겁을 했으면 당연히 부지깽이나 작대기 같은 걸로 족쳐 그 놈을 집 밖으로 쫓아냈어야 했을 텐데 어머니와 아버진 그러질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소 비굴하다고까지 느껴질 만큼 그 업에게 저자세를 취했다.

아버지 손에 빗자루가 들려 있긴 있었으나 아버지는 그걸 위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교통순경의 지시봉 정도의 용도로 사용했다 할까.

아버지는 빗자루로 헛간 쪽을 가리키며 업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유도가 아니라 숫제 비는 거였다.

봄날 한낮 마당으로 기어 나온 구렁이에게 보이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나친 조바심과 이해할 수 없는 간절함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뱀이 집을 나가 버리면 집안 살림은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부모님의 긴장된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속설에 지나지 않는 말을 부모님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하기야 집안에 곡식이 없으면 쥐가 없게 되고, 쥐가 없으면 자연히 뱀도 살 수 없다는 먹이사슬의 논리로 풀면 전혀 속설만은 아닐 테지만, 과연 부모님이 거기까지 생각했었는지는 모르겠다.

집안에서 튀어나왔던 뱀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대하던 부모님의 엄숙함 때문에 나는 아주 인상적인 기억 하나를 평생 간직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그때 업을 모시던 부모님의 그 간절함이 어려운 살림에 6남매나 되는 자식을 키워낸 본체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묻는다. 나한테는 그런 구렁이가 있는가. 이 나라엔 그런 업이 있는가.

구효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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