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사건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연루됐다는 검찰측 증거문서는 명백한 조작이라고 법원이 판시한 것은 충격적이다.법원이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서 이처럼 단호하게 검찰측 증거가 조작됐다고 선언한 전례가 있을지 의문이다.
재판부는 단순히 증거를 배척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재판을 정치 폭로의 장소로 이용할 목적으로 조작된 증거와 증언을 내놓은 것을 의심했다. 검찰에 대한 더 없이 준엄하고 가혹한 규탄이 아닐 수 없다.
97년 대선 직전 북측과 만나 북풍을 요청한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 사건 항소심 판결은 검찰 중립성 논란에 획을 그었다고 볼만하다.
북풍 사건 자체는 이미 한성기씨 등에 대한 별도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실체없는 해프닝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정 의원의 북풍 관련 혐의를 법원이 부인한 것은 새로울 게 없다.
중요한 것은 항소심이 진행되던 9월 말 느닷없이 검찰이 이 총재 연루 혐의를 입증한다며 내세운 재미교포의 증언과 증거가 조작됐다는 판단이다.
법원 판결은 재미교포 증인 김양일씨의 정체와 목적이 무엇인가에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따지고 해명해야 할 것은 검찰이 도대체 어떤 경위와 판단을 거쳐 김씨와 증거문서를 법정에 내놓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김씨 증언과 증거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책임은 김씨가 아니라 그를 증인으로 내세운 검찰이 전적으로 져야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증거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참고용으로 제출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이런 고도로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일방적 주장을 법정 증거로 제시해도 괜찮다는 얘긴지 어이가 없다.
문서 위조 여부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조작으로 규정한 것은 지나치다는 불평은 한층 궁색하다.
법원보다 더 객관적인 판단권을 부여받은 헌법기관이 달리 있다는 말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판결은 검찰 중립에 대한 비관과 절망, 사법부 독립에 대한 안도와 희망을 함께 느끼게 한다.
검찰의 지난 이력과 지금 내보이는 태도에 비춰, 조작 흔적이 뚜렷한 증인과 증거를 민감한 시기에 불쑥 내놓은 경위와 의도를 밝혀내긴 어려울 것이다.
특검제 수사를 떠들어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다만 이 지경에 이른 검찰이 다시 어디로 갈지, 그게 걱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