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인 처형 사건을 계기로 우리외교의 총체적 부실을 탓하는 목소리가 드세다.아무리 용서 받지 못할 범죄인이라 해도 남의 나라에서 한 사람의 국민이 처형당하고, 또 공범은 옥사 했는데도 현지공관이 몰랐다니 말이나 될 일인가.
입이 열 개라도 외교부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언론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입지를 도모하려는 '셈이 빠른' 옛 동료들의 질타까지 감수해야 하는 외교부는 이래저래 곤혹스럽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경우'다.
외교부가 생긴 이래 이렇게 '동네 북' 신세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번 사태를 외교부만의 책임이라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한다면 재발방지의 교훈은 찾기가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실책은 예고 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우리행정의 경직성이다. '간소한 정부'는 역대 정권의 단골 구호다. 국민의 혈세를 절약하자는데 이의나 반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불요불급한 인원과 조직의 정리여야지, 꼭 필요한 조직과 인원까지 감축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1,700여명 선이었던 외무부 인력이 이 정부 들어서 1,500명대로 줄었다.
특히 통상교섭업무를 흡수, 외교부가 된 1998년의 전체 인력은1,569명에 불과했다. 조직은 커졌으되, 인력은 되려 크게 줄었다.
반면 외교에 대한 수요(需要)는 크게 늘었다. 예컨대 한ㆍ중 수교는 엄청난 외교수요의 창출을 의미한다.
공약과는 달리 청와대 인력은 확대개편하면서 외교직은 크게 줄였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절반이 넘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보자. 성청(省廳)조직의 슬림화를 위해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던 일본 인사원(우리 중앙인사위에 해당)도 외무성 만큼은 오히려 매년 증원을 해주었다.
늘어나는 외교수요충당을 위해서는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주룽지(朱鎔基)총리는 취임하면서 '3년 내 공무원 절반 감축'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외교부만은 예외다. 날마다 늘어나는 외교수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상황은 내국인의 출입국이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재외국민수가 56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0%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공무원의 대폭 감축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지난해 주중대사관과 주 선양(瀋陽)영사사무소는 각각 10만 건에 달하는 비자발급 신청을 받았다. 본부직원 14명과 현지 채용 40여 명이 날밤을 새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비자발급 잡음을 야단치러 갔던 감사팀이 현장을 보고는 오히려 표창상신을 했다는 얘기를 결코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IMF같은 비상시엔 외교부라고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극복'후에는 즉각 원상회복 하는 탄력성이 필요하다.
공관의 감축문제만 해도 그렇다. 98년 2월 행정개혁위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10개 대사관과 총영사관 9곳 등 22개 공관에 대해 폐쇄결정을 했다.
이로써 연 600만 달러의 절감효과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공관의 폐쇄로 입은 수출손실액은 20배가 넘는 1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런 밑지는 장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뿐만 아니다. 볼리비아 예멘등 이른바 '3인 공관' 서너 곳을 폐쇄하자 상대도 즉각 주한공관을 닫았다. 철저한 상호주의다.
여기서 비용과 손익(cost와 benefit)을 한번 냉정히 따져보자. 우리가 폐쇄한 3인 공관의 1년 유지비는 약 30만 달러다.
서울의 비싼 물가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서울에 공관을 유지하기 위해 몇 배의 달러를 소비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30만 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60만, 70만, 아니 100백만 달러의 고객을 내쫓은 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외교부는 이번 사태에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하지만 외교부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노진환 논설위원실장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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