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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 첫 여성장군 양승숙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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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 첫 여성장군 양승숙 대령

입력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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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첫 여성장군은 무엇보다 ‘군=남자’라는 일반의 옳지 못한 인식을 바로잡는 데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한국군 창설 53년만에 첫 ‘여성(女星)’으로 떠 오른 육군본부 간호담당관 양승숙(梁承淑ㆍ51) 대령. 진급 발표 다음날인 9일 어둠이 내릴 무렵 집무실인 충남 계룡대 간호과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축하 난화분이 가득 메운 2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그는 감회어린 표정을 애써 감추며 29년간의 군생활과 군과 여군에 대한 나름의 단상을 풀어 내려갔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싶은 강한 욕구 때문에 군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잠시 떨리기도 했다.

짙은 난향을 맡으며 들어 본 여성장군의 ‘인생과 군’을 글로 옮긴다.≫

-여군으로서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 데.

“(손을 내저으며)특별히 여성이라고 해서 어려운 점은 없었다. 군만큼 남녀 평등이 지켜지는 곳도 없다. 진급과 대우에서 차별이 없다.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군=남자’라는 잘못된 인식이다.

첫 발령지가 원주병원이었는 데 시설이 너무 열악해 괜히 군에 지원했다는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훈련 중 다쳐 입원한 병사들을 보자 내 형제 가족이 다친 것 같아 그 생각을 지웠다. 물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건 남자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군 입대를 후회한 적은 없었나.

“간호병과는 손바닥을 보듯 누가 승진할 수있는지 알 수 있다. 최선을 다한 덕분인지 동기들보다 진급에서 앞서 갔다. 그러나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92년대령 진급에서 실패해 군 생활을 끝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않던 93년에 대령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첫해에 진급했더라면 이번 장군 승진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고‘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때 진급했더라면 올 8월 제대했어야 했다.”

- 여군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데.

“최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데 군도 마찬가지다. ‘금녀의상징’이었던 3군 사관학교에서 여성 사관생도를 선발하고 있고, 얼마전에는 해군함정에 여성장교가 발령 받는 등 여성 진출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여성 파일럿도 곧 나오게 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체력적으로는 열세일 지 몰라도 섬세성 등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책개발, 연구, 교관 등은 여성들이 적극 진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여군은 군의 경쟁력을 높이는 대체 재역할을 충분히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인사에서 전투병과와 간호병과 등 여군 내에서 갈등이 심해진것 같은 데.

“여군은 전투병과와 간호병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남성 군처럼 전투,정훈 등 다양한 특기로 분류된다. 나의 승진은 여군 전체를 대표한 것일 뿐이다. 남녀나 병과를 따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 응분의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국가와 군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우리 여군도 앞으로 별둘(소장), 별셋(중장)이 나올 수 있다. 나는 병과를초월해 여군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전력을 쏟을 각오다.”

-장군 승진 꿈을 가진적이 있는 지.

“없었다. 입대할 때만해도 대령이 간호장교의 최고위직이었다. 그래서 대령까지는 꼭 승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군생활을 하다보니 장군으로 진급하는 행운까지 누리게 됐다.”

-간호대학 출신으로 당시 취직이 잘 됐을텐데, 장교를 결심한 계기는.

“전남대 간호학과를 다니면서 야전병원을 다룬 미국 드라마 ‘매쉬(Mash)’를 보고 간호장교에 매력을 느꼈었다. 그러던 중 광주병원에서 간호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간호장교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솟구쳤다.”

--전후방으로 임지를 옮겨 다녀 가족에게 미안한 점도 있을 텐데.

“올해가 군생활 29년째다. 그 중 절반은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남편은 대전 주변에서 교사생활을 했지만, 나는 전방부터 마산까지 곳곳을돌아다녀 주말부부생활을 했다. 결혼 초에는 요즘처럼 휴대폰이나 일반 전화가 없어 남편과 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리움을 달랬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셨다. 한번은 남편은 충남 청양, 나는 서울, 아이들은 대전에서 지내는 세 집 살림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들과 가족들이 심하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다.

전후방을 돌아다니느라 수능시험 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늘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누가 가장 기뻐했나.

“어머님(70)과 남편 등 가족이었다. 어머님은 장군이 어떤 자리인지잘 모르셨지만,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선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진급 발표가 난 어제는 진급을 기원하며 종일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셨다고 들었다.

남편은 어제 밤 늦게 계룡대 관사로 노란 장미다발을 갖고와 축하해주었다. 그 때 간호사관학교장 시절 남자 부하들이 찾아와 함께 와인을마셨다.”

-6자매 중 셋째딸이라고 하는데, 어릴 적 가정환경은 어떠했는 지.

“고향은 충남 논산군 광석면으로 아버님(95년 작고)은 공무원이셨고 면장으로 정년 퇴임하셨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부유하진 않았지만 유복했다. 아버님은 항상 교육이 재산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

늘 ‘혼수는 못하더라도 교육은 시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생각에 6자매를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킨 것 같다. (그래서 혼수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그렇진 않았다. 아버님은 여자라고 해서 가정생활에 매달리기 보다 직업을갖길 원하셨다. 특히 교사나 간호사를 하도록 많이 권하셨다.

큰언니가 간호대학에 들어간 뒤 4자매가 의료계에서 간호사(3명)와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이병웅ㆍ李炳雄ㆍ55ㆍ충남도교육청 장학사)이 노래와 요리솜씨를 아주 자랑하던데.

“성악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가곡을 좋아한다. 특히 비목을 잘 부르는 편이다. 바로 밑 두번째 동생이 성악과를 졸업했다. 한식은 대부분 할 수 있다. 어머님이 방학 때면 ‘남을 부리더라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김치 된장 고추장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신 덕분이다. ”

●양승숙 대령 프로필

1950년 3월 충남 논산 출생

대전 호수돈여고 졸업

전남대 의대 간호학과 졸업

한양대 보건대학원 석사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고관리자 과정 수료

간호후보 29기 임관

광주병원 간호부장

국방부 간호관리 담당

국군 수도병원 간호부장

군국 간호사관학교장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軍과 여성

최근 취업난 등의 여파로 여군이 최고 인기직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여군모집에서 장교는 17대1, 부사관은 19대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다.

현재 우리 군에서 여성의 비율은 군 정원의1.5%인 2,400여명. 이들은 남자군인들과 똑 같이 보병, 정보, 특전사 등 모든 병과에서 근무하고있다. 국방부는 여군의 역할확대에 따라 2050년까지 여군 인력을 군 정원의 5%인 7,000명으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군에서 여군의 역사는 한국전쟁 전인 1948년 8월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은 간호인력 충원의 필요성에 따라 간호자격증이 있던 여성 31명에 대해 군사훈련을 시킨 뒤 소위로 임관시켰던 것이 시발이다.

그러나 여군창설일은 한국전쟁 때인 50년 9월1일로 기록된다. 이는 국방부가 여군 창설명령에 따라 여자의용군 교육대를 설립, 491명의 여군을 배출한 것을 정식여군 창설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55년에는 여군훈련소가 서빙고에 설립돼 여군 양성시대가 열렸고, 여군훈련소는 90년 여군 학교로 승격됐다.

육군은 여군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90년 여군단을 해체한 데 이어 91년에는 여군병과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여군은 남군과 같이 보병ㆍ정보 등 일반 병과로 재분류됐으며, 93년에는 훈련소 연대장, 신병 교육대소대장직을 여성에게 개방했다. 또 96년부터는 3군 사관학교에서 여자생도를 선발, 조만간 보병소대장과 파일럿까지 배출될 전망이다.

특히 간호장교들은 한국전을 비롯 베트남전, 걸프전, 유엔 평화유지군(PKF)에참여,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의료지원단의 일원으로 파견될 예정이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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