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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서울시민대상 영예의 수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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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서울시민대상 영예의 수상자들

입력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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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이기찬씨평생을 오직 불우이웃돕기에만 헌신한 사람이 있다. 번듯한 직장도, 주택도 갖고있지 않다.

더구나 그는 지체장애인(4급)이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고에서 30년간 4평 규모의 간이매점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폐품 등을 수집해 그 수익금으로 고학생들을 비롯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펴 온 이기찬(李起贊ㆍ68ㆍ서대문구 홍은동)씨.

그는 제13회 서울시민대상의 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라며 겸손해 했다.

이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 등 집안일에 매달려야 했다.

1972년 지금의 학교에서 매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경우처럼 학비가 없어 학업을 그만두는 학생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신문지 폐휴지 빈병 등 돈이 될만한 것들은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소년소녀가장 등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학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했다. 그가 그 동안 학업을 무사히 마칠수 있도록 도와준 학생들은 230여명. 학생뿐 아니라 동사무소로부터 소개 받은 인근 지역 극빈자 수십명에게도 매월 생활비 일부를 보내주고 있다.

“일과 후에는 무조건 이웃돕기를 위해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 좀 소홀하게 됐고 아직도 전세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집사람에게 가장 미안하지요.”

96년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오토바이를 구입해 폐품수집을 계속했다.

또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서울대병원측에 사후 안구기증을 약속하기도 했다.

현재 발목 절단 후유증 때문에 입원 중인 이씨는 ‘상금 1,000만원을 어디에 쓰겠느냐’는 질문에 “상금은 벌금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를 위해 쓰라는 게 아니고 또 다른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도와주라는 돈이니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염영남 기자

■본상 유명철씨

“의사로서 당연히 아픈 사람들을 도왔을 뿐인데 이런 과분한 상을 받게 되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관절관련 질환치료 권위자인 유명철(兪明哲ㆍ58ㆍ정형외과) 경희대 의대 교수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 수많은 관절병 환자들에겐 희망의 전도사이다.

대학 때부터 왕성한 의료봉사활동을 펴왔던 유 교수는 일회성의 무료진료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1986년 직접 X-레이 촬영기와 관절염 진단기기 등 의료장비를 갖춘 무료검진차를 제작, 주말과 공휴일마다 자원봉사팀을 이끌고 전국순회진료에 나섰다.

강원 고성군에서 제주까지 전국 방방곡곡 안가본 곳이 없다. 이 진료팀은 벌써 3만명을 넘게 치료하고, 200여명에게 무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97년부터 해외동포로 봉사의 폭을 넓힌 유 교수는 재중동포를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하던 중 98년 옌볜(沿邊)에서 만난 쌍둥이 조향옥(14) 향자양 자매를 잊지 못한다.

올해 8월로 3번째 수술을 받은 향옥양이 드디어 걸음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 한국에 가려다 사기 당했던 부모에게 고국에도 따뜻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전해줄 수 있었다.

또한 98년에는 사할린거주 동포를 서울로 초청해 무료 시술을 베풀기도 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삶의 도리”라는유 교수는 힘이 닿는데 까지 의료봉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이성원 기자

■본상 김창동씨

“남들에게 떠들고 다니는 봉사는 싫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소리없이 돕는 게 즐겁습니다.”

20여년동안 한결같이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을 돕고 살아온 김창동(金昌東ㆍ55ㆍ광진구 능동)씨는 수상 소식을 접하고 먼저 가족들이 알게 될까 멋쩍어 했다.

자신의 활동을 정작 부인은 모르기 때문이다.

의류 원단회사를 운영하는 김씨는 10여년 전부터 강남구 수서동의 시립아동보호소 등에 1,700만원 상당을 후원하는 등 봉사활동에 매진해 왔다.

이밖에 청소년선도, 실업자구제 등 그의 도움이 닿은 곳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구민체육대회와 경로잔치를 지원하는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에도 앞장 서 왔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일찍 부모를 여의고 누이 슬하에서 컸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 16세 때부터 동대문시장에서 원단 배달일을 시작했다.

“당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자전거를 탔는데 ‘공짜로 먹으라’며 따뜻한 설렁탕을 말아 주신 식당집 아주머니를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도 결식아동을 보면 그때의 아주머니가 생각나 코끝이 찡해지곤 합니다.”

“4월에는 결식아동 25명을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을 방문해 물개쇼와 서커스를 관람했다”고 말하는 김씨의 눈길은 40년전 그 식당집 아주머니처럼 따뜻했다.

박석원 기자

■장려상 나주봉씨

“소중한 아이를 잃어버리고 고통 받는 부모들에게 더많은 도움을 주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동대문구 청량리역 앞에서 의류 노점상을 하고 있는 나주봉(羅周鳳ㆍ43ㆍ동대문구제기동)씨. 떠돌이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1991년 인천 월미도에서 ‘개구리소년’의 아버지들을 우연히 만난 뒤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아 찾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비로 전단지와 카세트테이프 등을 만드느라 4년만에 전재산 6,000만원을 날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안 부모 품을 다시 찾은 20여명 아이들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나씨가 그 동안 시민들에게 나눠준 전단지는 모두 100만여장. 부인(36)과의 결혼식도 미루고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1.4톤 짜리 트럭까지 판 돈을 고스란히 전단지 제작에 쏟아 부었다.

“주위에서 ‘뒷돈이 생기는 것 아니냐’ ‘미친 것 아니냐’ 등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만은 제 진심을 알아줄 겁니다.”

최근 극심한 생활고와 지병인 간경변에 시달리는 나씨의 꿈은 ‘미아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

나씨는 “허황된 희망인가요?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미아 찾기에 나설 생각입니다”라며 이번 주 나눠줄 전단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이번 겨울엔 제가 군밤 봉지에 넣어드리는 전단지를 한번 더 유심히 읽어봐 주세요.”

최문선씨

■장려상 이점순씨

“자식 사랑에 초등학교 학부모회에 참여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어느새 30여년이 훌쩍 흘렀군요.”

제13회 서울시민대상 장려상을 수상한 이점순(李点順ㆍ67ㆍ주부ㆍ구로구 구로동)씨는 2남1녀가 졸업한 서울 구로초등학교 육성회장을 13년동안 역임할 정도로 속칭 ‘치맛바람’이 거센 학부모였다. 하지만 이씨의 치맛바람은 자기 자녀들만 감싸는 속 좁은 것이 아니라 자식과 가족이 속한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보다 폭넓은 것이었다.

그는 1970년대 반복되던 물난리나 77년 전북 이리역 폭발 참사 등 대형사고때마다 구호물품 전달에 앞장 서왔다.

80년대에는 불우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보냈고 환경미화원 후원회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이씨의 봉사활동은 97년 탈북 귀순자와의 자매결연, 98년 IMF 직후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씨는 백만주부 과학화 운동 및 반상회 부녀교실 운영, 여성 합창단 운영등 주부들 지위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 가족이 다복하게 꾸려나갈 수 있게 해준 이웃과 사회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왔다”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사회활동에 미쳐 있는 것을 이해해주신 시아버님(89년 작고)와 시어머님(86년 작고), 그리고 가장 큰 후원자인 남편에게 감사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정영오 기자

■장려상 민간방범순찰대 강북연합대 미아2지대

“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아닌가요?”

한국민간방범기동순찰대 강북연합대 미아2지대의 18명 대원들은 서울시민대상 장려상수상 소식에 오히려 쑥스러운 표정이다.

1995년 우범지역인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 2평 남짓 크기의 순찰본부를 차린 뒤 줄곧 2만명에 이르는 강북구 미아2동 주민의 ‘편안한 밤’ 을 지켜 왔다.

“매일 오후10시부터 4시간의 방범순찰을 하다 보면 졸음 추위 더위 등으로 고생할 때가 많죠. 그래도 ‘덕분에 잘 잤다’는 격려를 들으면 저절로 힘이 솟습니다.”

이들이 그 동안 집으로 돌려보낸 가출 청소년이 무려 180여명. 매일5~10명의 취객을 차에 태워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파출소로 인계하는 등 ‘경찰 부럽지 않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소년 본드흡연과 혼숙 등으로 일반 시민들이 접근조차 꺼려했던 북한산 입구가 주민들의 ‘안심산책로’가 된 것이 이들의 최대 보람이다.

이들의 계획은 미아2동을 ‘범죄 없는 마을’로 만드는 것. 대장 정광일(鄭光一ㆍ48ㆍ자영업)씨는 “매년 2차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효도관광 행사를 마련하는 등 ‘봉사순찰대’로 거듭날 계획”이라며 “방범순찰은 필요 없고 봉사만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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