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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강요된 강습 '연장자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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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강요된 강습 '연장자 존경'

입력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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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니세프(UNICEF)가 발간한 보고서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한국이 아시아 국가들 중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부족한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 살고 있는 서양인들은 한국의 어른들이 특별하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단언할 수 있는 많은 사례도 제시할 수 있다.

대학을 들여다보아도 학생의 교수에 대한, 후배의 선배에 대한 존경은 나 같은 외국인이 보기에는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래 사람이 상사에게 표현하는 존경의 수위는 아예 '경의'에 가깝다.

하지만 대학과 기업은 사회적 윤리보다는 사적 이해관계에 이끌려 존경심이 표현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사회적 윤리에 따라 자발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이다.

작년 서울의 어느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고교생과 말다툼을 하다 살해된 노인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돼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다.

물론 일반화를 하기에는 너무나 예외적인 사건이었지만 한국의 버스나 전철에서 어른들은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참고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공자의 유교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연장자에 대한 맹목적 존경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재평가는 근대화와 발전을 위해 자유주의를 어떤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했던 한국 사회가 필연적으로 밟을 수밖에 없는 과정일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기주의를 공공선에 이르게 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서 옹호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존경에 대한 관념이 변화했다고 단정짓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는 이러한 변화에 책임이 있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변화가 부정적인 변화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책임 소재는 젊은이들에게 떠넘겨진다.

하지만 과연 어른들은 책임질 영역이 없는가. 국회에서 마치 놀이터의 유치원생과 같은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또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사법적 심판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기업가는 어떤가. 공공교통수단 등을 이용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른들의 참을성 없는 태도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매우 우아한 외양을 가진 여인들이 전철을 타면 자리를 찾으려고 갑자기 100m 달리기 선수로 돌변하는 모습은 어떤가.

또 그다지 나이가 들어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건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어른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젊은이들에게 자기가 앉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떤가.

나는 종종 지하철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그 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삿대질을 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럴 때마다 매우 당혹스럽다.

어른들의 이런 행동이 전통적 존경에 대한 관념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존경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그 대가로 존경을 덜 받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일이다.

존경하고 싶지않은 이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을 거부하는 것은 반드시 나쁜, 혹은 부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반면 엄격한 규제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형성된 존경심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불평등의 근원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존경이라는 관념에 대한 변화는, 만일 우리가 좀 더 합리적으로 대처한다면,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에릭 비데 · 프랑스인·홍익대 불문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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