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게 정치인" 이라고 했던 흐루시초프 전 소련총리의 말은 고금의 진리다.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에게 경제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찌른 촌철살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자들은 입만 열면 경제를 부르짖고 국민들은 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니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숙명적 관계이기도 하다.
정경분리니 경제정책의 독립이니 하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만 양자의 주종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정치인들이 경제를 '미끼'로 내거는 일은 냉전 와해 후 세계경제 전쟁이 펼쳐지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제 세계 각국 지도자 중에 언필칭 '경제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부문의 선구자는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명실상부한 경제대통령이었다.
그의 유신독재 시절, 정치는 없고 경제만 있었으니 말이다. 5공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적 성공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준비된 경제대통령'의 팡파르 속에 권좌에 올랐던 김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내놓았다.
정치와 절연하고 국정, 특히 경제문제 등에 전념하겠다 한다. 탁월한 식견과 지식을 갖춘 분에 의해 '경제의 탈(脫)정치화'가 비로소 실현되게 됐으니 언뜻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승부수는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까다로운 조건들이 구비되어야 하기때문이다.
집권당의 평상심, 야당의 초당적 협조, 관료들의 충성심 유지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 삼박자가 어긋난다면 경제는 오히려 최악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왕적 정치권력을 끝까지 놓지 않아 가능했다.
요즘 부시 미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힘을 받게 된 것도 테러사건 후 강화한 정치권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이 어려운 경제난국에 반대로 정치권력을 포기하고 행정권 만으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한다.
일찍이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던 신선한 정치실험이라고 기대 만 갖기에는 위태로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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