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이 중국에서 사형당한 일 때문에 연일 외교부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이 정도의 질책이면 문제의 뒷처리가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7일 외교부 장관의 발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에는 불충분한 것 같다.
자국민 보호라는 기본적 임무를 소홀히 해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킨 외교부가 이제는 행정적인 과오와 외교적 실책을 혼동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외교적 실수의 모든 책임까지 실무자에게 떠넘기고 외교부나 주중대사관의 수뇌부는 면책의 그늘로 숨고 있다.
이 문제의 명명백백한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어디까지가 행정적인 잘못이고, 어디부터가 이번 사태를 자초한 중대한 외교적 실책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주 선양(瀋陽)영사사무소 총영사와 영사 등 실무 책임자들이 징계 대상이 되어 절차를 밟고 있다. 그들에게는 문서수발 관리의 소홀함과 자국민 보호를 위해 좀 더 능동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책임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금 문제가 되는 '망신외교'의 죄상까지 씌워 중징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사건의 실무적 책임을 묻고 행정적인 시정책을 강구한다니 국민들도 일단은 지켜볼 것이다. 그러면 중국측의 사전통보가 없다고 '국제협약위반' '가혹행위' 하면서 기세등등하게 중국측을 비난하다 오히려 우리 외교부장관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사과까지 하게 된 외교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여론의 비난을 벗어나기에 급급해 문제의 전말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채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유감의 뜻을 표하고, 대통령까지 유감을 표하도록 허위 보고한 외교 수뇌부는 지금 무슨 책임을 지고 있나.
외교에는 예방외교와 대응외교가 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중국측과 사법공조를 하는 것은 예방외교에 속한다.
이번에 우리는 이러한 예방외교에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대응외교에는 더 큰 실패를 했다.
주권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불만 표시는 반드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외교의 기초를 망각하고 말았다.
외교부가 요즘처럼 지탄의 표적이 된 일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 연초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문제로 대 미 외교와 대 러시아 외교를 한꺼번에 불편하게 만들었던 외교부다.
일본과의 '꽁치분쟁'에서는 어장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러시아의 허가를 받았는데 일본이 무슨 소리냐며 당당하던 시절은 간데 없고, 지금은 러시아와 일본에 대체 어장이라도 달라고 사정하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외교다. 통일외교의 새 시대를 맞아 주변 4강과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때 우리 외교부는 과연 이대로 좋은가.
북한과의 대결외교 속에 미국과 비슷한 입장만 취하면 큰 실수가 없고 국민의 관심도 낮았던 냉전시대의 무풍(無風) 외교 시절은 지나갔다.
문닫고 지내던 북한과의 문제가 새로운 중요 현안으로 다가왔다. 군축 등 세계적 이슈들도 잘 공부해야만 ABM파문과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의 해외진출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영사업무도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외교환경이 어렵고 복잡하게 변해 외교부가 이에 적응하는데 힘겨운 것은 이해한다.
특히 험한 지역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맡아 시달리는 상당수 외교부직원에게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번 사건 처리과정을 짚어보면, 외교부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 성급히 조치를 취함으로써 더 큰 화를 자초했다.
외교에서 여론은 존중돼야 하지만 여론의 압력 속에서도 국익을 지키기 위해 맞서고 설득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다소 잘못이 있어도 정직한 정부를 지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석규 한양대 객원교수 전駐日ㆍ駐러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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