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도발적인 저서로 ‘공자 논쟁’을 불러 일으킨 김경일(43) 상명대 중문과 교수가 세계화 시대의 생존전략으로 ‘오랑캐정신’을 제안했다.새 저서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에서 김 교수는 “변두리 국가인 한국이 21세기에 살아 남으려면 과감하게 섞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공자가…’를 펴낸 뒤 2년 동안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만주어를 공부했다.
그는 만주어의 전신인 여진족의 언어 속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고유어가 적지않게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진족의 ‘더투리’는 우리말의 ‘도토리’와, ‘누러’는 ‘누룩’과 닮았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찾아낸 그는 “여진족의 언어는 잃어버린 우리말”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언어 연구를 토대로 삼아 김 교수는 “나는 여진족이며 오랑캐”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민족과 여진족이 고대 시대에 언어와 생활을 공유하는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오랑캐 정신’은 ‘강력한 중심문화를 수용하면서 자신을 살찌워가는 생존술’이다.
여진족이 지배권력을 잡았던 원, 청조는 모두 당시 중심 언어였던 중국어를 자국어로 채택했다.
김 교수는 “고유 언어를 지키기 위해 황실의 내부문서는 만주어로 기록했지만, 중국어가 주류라는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였다”면서 “우리나라 역시 한국어를 고유어로 보호하는 한편 영어가 주류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오랑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영어 공용화’를 주장한다. ‘영어 공용화’라는 주장은 낯선 것이 아니지만, “나는 오랑캐이고, 오랑캐 정신을 이어받아 주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근거는 문제적이다.
그러나 결국 오랑캐인 여진족의 왕조도 멸망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역사상 망하지 않은 왕조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연하면서도 공격적인 오랑캐 정신을 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세종대왕은 바이링구얼(bilingual, 두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세종대왕은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라면서 “멀쩡한 한자를 두고 한글을 새로 지어 동시에 사용하도록 한 것은 분명 바이링구얼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세종대왕이 21세기에 살아있다면 영어를 가르쳤을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아들부터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애당초 김 교수가 마음에 두었던 책 제목은 ‘한국인을 오랑캐로 만들어라’였다. 그러나 출판사와 상의한 끝에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는 서정적인 제목으로 정했다.
한국인을 만주 오랑캐로 규정짓는 논리가 비약적인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만주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제도권 교육을 통해 배운 국사 상식으로 나와 논쟁을 벌이려는 사람과는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지영기자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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