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9일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38세로 죽었다.아폴리네르를잘 모르는 독자들도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네/ 그리고 우리들의사랑도/ 기억해야 하는가 그 사랑을”로 시작하는 그의 시 ‘미라보 다리’는익숙할 것이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의 사생아로 로마에서 태어난 이 시인을 스위스 출신의 비평가 마르셀 레몽은 “1905년부터 1920년 사이에 프랑스 예술이 열어놓은모든 길에 그 그림자를 드리운 시인”이라고 평했고, 초현실주의의 기수 앙드레 브르통은 “이세상 최후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실상 20세기 문학사와 미술사에서 큰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초현실주의’라는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아폴리네르였다. 그는 생전에 시인으로만이 아니라 미술평론가로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아폴리네르는 제1차세계 대전이 끝난 이틀 뒤에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혔다.그는 그보다 나흘 전에 죽었다. 그는 1915년 4월부터 참전했고, 프랑스 정부는 그 대가로 그에게 프랑스 국적을 주었다.
1916년 3월 전선의아폴리네르는 두뇌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는 몹시 위험한 수술을 받고서도 용케 살아남았지만, 그 총상에서 회복되던 중에 독감에 걸려 종전을 보지못하고 죽었다.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렸던 이 독감은 1918년 초부터 전세계를 휩쓸다가 1919년 중엽에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그 사이에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페르라셰즈 묘지 제86묘역에 있는 아폴리네르 무덤의 묘비에 새겨진 시의 한 구절.“사람들이 결코 건드리지 못한 것/ 난 그걸 건드렸고 그걸 말했네/ 아무도 그것에서 상상하지못하는 것/ 난 그 모든 걸 캐냈네.”
바로 그것이야말로 시업(詩業)의 정의일 것이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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