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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제국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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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제국의 황혼

입력
2001.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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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오던 '역사에세이 - 유라시아 천년'이 지난 주 수요일로 40회 연재의 막을 내렸다. 구상단계까지 생각하면 2년 3개월이 걸린 대형기획이었다.기획의 싹이 튼 곳은 1999년 7월14일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프랑스대혁명 기념파티'였다.

이곳에서 서울대 서양사학과 한정숙교수를 만났다. 한교수는 독일 튀빙겐대에서 러시아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러시아사가 엘렌 카리에르 당코스(국립정치대학)교수를 국내초빙한 인연으로 파티에 초대되어 왔다.

한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한 때문인지 유럽의 맞수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기질차이가 화제에 올랐다. 처음은 프랑스인 험담으로 시작됐다.

프랑스인들은 왜 그렇게 잘난 척만 하느냐, 테제베만 팔아먹고 외규장각 고문서도 안 돌려주는 것만 봐도 자기네 이익만 챙긴다 등등이 이어졌다.

반면 독일에 대해서는IMF가 터졌을 때 유럽국가로는 최초로 한국정부에 대한 지원의사를 밝혔다, 한국에 나와있는 독일인들을 봐도 프랑스 얌체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인격이 좋다 등등 좋은 말이 쏟아졌다.

프랑스 포도주를 마시며 프랑스험담을 하다가 이야기는 진전되어 당시 독일에서의 교민여학생 피살사건이 화제로 올랐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만나면 온순한 독일인들이 모인 나라에서 신나치 같은 극우파의 활동은 왜 그렇게 거센 것일까."

"개인적으로 만나면 자신들밖에 모르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는 왜 극우파라고 해야 입만 살아있는 르펭 같은 인물 정도이고 인종차별 살상사건은 드문 것일까."

거기에 대해 한교수는 "역사적경험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비록 개인적으로는 미숙하고 유치할 수 있지만 선조들이 프랑스대혁명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은 국민 전체로 하여금 늘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정신에 비춰 나의 행동은 옳은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식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인종차별적인 행동에 대한 멸시가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물론 어느 나라의 인종차별양상은 집권층의 지배양식과도 상관이 있는 것이어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보수정권이 자리잡으면 사회적 소외계층은 자신들이 받는 불이익을 이민자와 여성, 노약자등에게 분노로 표출함으로써 해소하기도 한다.

그런점에서 당시의 대화는 지금의 독일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경험이 민족정서에 끼치는 영향은 분명해 보였다.

그 참에 서울대 역사학자 4명이 유라시아횡단기행을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일보가 기행을 지원하고 과연 역사의 부침이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주는가를 보여주자고 한 것이 '역사에세이'라는 기획으로 이어졌다.

유라시아를 관통하면서 역사학자들은 12~13세기 몽골대제국이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경험이 지금 어떻게 각국에 남아있나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한때는 '울어줄 눈이 없어 울지도 못할 만큼' 잔인한 살육으로 주변국을 정복한 몽골은 정복 이후에는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며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지금 몽골대제국은 어디에 있나. 연재를 마치며 남는 의문은 제국은 언제 융성하고 몰락하는 것인가 였다.

교수들은 한결같이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계속 수혈할 수 있을 때 제국은 융성하지만 어느 순간, 정점이라고 여기고 멈춰서 버릴 때 제국의 황혼은 금방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어떤 국가, 기업, 조직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라고 했다. 단일의, 순정한 문화는 정복기의 응집력에는 힘을 발휘하지만 제국의 유지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호남인들만의 김대중 정권에도, 외무고시 출신들로 주로 구성된 우리 외교인력에도, 교대ㆍ사대출신의 인력이 주구성원인 교육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일 수 있다.

서화숙 여론독자부장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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