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재보선 선거가 끝나고 정국이 한바탕 술렁이고 있다.유권자들은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높은 투표율과 많은 표차로 국민적 심판을 보여주었다.
여당의 참패는 여권내부의 갈등에 불을 붙이고 있다. 실명을 거론하며 핵심참모의 정계은퇴를 주장하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감에서 사표를 내고, 내가 그리고 우리 계파가 무얼 잘못했는가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다들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변명해 보지만 국민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야당도 그런 눈치를 챘는지 애써 조심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국 정치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케네디 정부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면서 정책실패는 집단사고의 어리석음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 초 쿠바에 카스트로 공산혁명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이를 전복하려 했다.
하지만 강대국 미국이 약소국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외교적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미 해군과 공군, CIA는 카스트로 정권에서 쫓겨나 망명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쿠바에 침투시킬 계획을 세웠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러스크 국무장관등 엘리트 보좌관과 CIA 국장, 그리고 합참의장 등 군사전문가들과 치밀한 전략회의를 했다.
전략회의의 결정은 픽스만(Bay of Pigs)에 반정부 쿠바 군인들을 미군의 수송기로 침투시키는 것이었다.
국가안보회의에서 군사전문가들은 잘 훈련된 쿠바의 반정부 군인들이 침투하면 카스트로 혁명군은 당황하여 좌충우돌할 것이고, 투항하는 혁명군도 많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반정부 군인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없었다고 발뺌을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침투된 반정부군인들은 제대로 된 작전 한번 못 펴보고 비참하게 사살되거나 생포되었다.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미국이 반정부군을 지원한 것이 드러나, 전세계의 비난이 케네디 대통령의 참신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1년 뒤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가 구축되고 있다는보고 때문에 케네디 대통령은 또 다시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했다.
미국 코앞에 핵무기가 배치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픽스만 침투에서 심각한 외교적 타격을 입은 케네디는 당시의 정책실패가 집단사고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동질적 성향을 가진 집단내부에서는 정보교환이나 판단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재니스는 이를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이라고 명명했다.
픽스만의 실패는 합참의장이나 해군제독CIA 국장 등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강경책을 주장했고, 이를 저해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낙관적 전망만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강경파들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도 즉각적 공습을 주장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부탁했다.
문제점만을 지적해서 집단적 사고를 훼방하는 악마역할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고, 결론은 즉각 공습보다 온건한 해안봉쇄로 선회했고 정책은 성공했다.
민주당의 재보선 참패와 최근의 내분은 두 달 전개혁성향의 의원들이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이다.
대통령을 포함,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권력 내부는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이된 것이다.
동교동계의 문제가 여론이나 당내부에서 그렇게 여러 번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정보와 낙관론이 권력핵심부의 집단사고로 나타나 치명적 실패를 자초한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민주당의 개혁과 대선가도에서 더 이상 집단사고의 희생자가 되지 말고 '악마의 대변인'에 귀를 기울이는 현명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염재호ㆍ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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