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에서 돈 킴이란 독자가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 주 지평선에 쓴 '선전전과 언론'을 욕하는 내용이다.아프간 탈레반이 민간인을 인간 방패 삼는다는 주장은 오폭 책임을 떠넘기는 상투적 거짓 선전이라는 대목이 특히 터무니 없다고 했다.
논평과 질책은 독자의 권리지만, 근거를 요구하고서 곧장 노동신문 주필이나 하라고 매도한 것이 얄궂다.
메일로 답할 일을 공개하는 이유는 미국을 비판하면 반미이고, 반미는 용공이란 식의 고약한 논법을 공개 시비하기 위해서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관을 분별하지 않고, 전제에 관한 논증없이 준비한 결론에 달려가는 논법이다.
색깔론이나 매카시즘이 전형인 이런 사고는 국제 정세를 보는 우리사회의 안목까지 협소하게 얽맨다.
이 병폐를 일깨우는 것은 당장 아프간에 전투 병력을 파견하는 문제를 논란하는데도 도움될 것이다.
걸프전 때 미국은 바그다드의 민간인 방공호를 오폭, 수 백 명을 살상한 뒤 후세인의 위장 지휘벙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택가 방공호는 지휘 벙커에 필수적인 통신시설조차 없었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부녀자와 어린이였다.
은폐할 군사 표적이 없는 판에 인간 방패 비난은 애당초 허황된 것임을 밝힌 증거는 언론과 학자들이 숱하게 인용했다.
유고 공습 때도 피난 농민의 트랙터와 마차 행렬을 오폭한 뒤 인간 방패 선전을 동원했으나, 현장 기록 화면 어디에도 유고군 차량과병력은 없다. 트랙터를 군 기갑차량으로 오인한 것이 명백했다. 아프간에서는 국제 적십자사 시설이 오폭 대상에 포함된 것이 객관적 증거가 됐다. 미국도 별 수 없이 오폭을 시인했으니 인간 방패론은 섣부른 모략 선전인 셈이다.
미국의 전쟁을 비판하는 것을 반미 용공으로 모는 무모함을 경계하기 위해 우습지만 사적인 얘기를 덧붙인다.
필자는 오래 전 주한미해군 사령관 지휘벙커에서 통역장교로 근무했고, 첫 팀 스피리트 한미 합동상륙훈련에 함포연락장교로 참여해 적진 공습과 포격의 이론과 실제에 무지하지 않다.
일리노이 독자는 비난만으로 미진했는지 덕 패튼이란 보수 논객의 글을 첨부했다.
언론이 뉴욕 테러 희생자들을 제쳐둔 채 아프간 국민의 참상을 보도하는 것은 잘못이란 요지다.
전쟁의 목표는 오로지 승리하는 것이며, '부수적 피해'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간인 수 십만 명이 희생된 히로시마 원폭 투하도 더 큰 인명피해를 막은 것으로 정당화한 글이다.
아프간 전쟁을 보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의 시야를 흐렸던 뉴욕의 잿빛 콘크리트 분진이 가라앉으면서, 노한 응징론의 기세에 눌렸던 이성적 분별력을 되찾는 조짐은 미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탁월한 논평가 윌리엄 파프는 전쟁 상대를 테러리즘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바꾸거나, 둘을 동일시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규정했다.
빈 라덴 체포와 탈레반 전복이 어렵다고 해서,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없는 아프간 국민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본말을 뒤집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저명한 국제법학자 프랜시스 보일은 한층 직설적이다. 그는 독일 슈피겔 인터뷰에서 미국이 빈 라덴의 테러 범행과 탈레반 정권의 연루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아프간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국제법 절차를 무시한 전쟁을 감행하는 진정한 동기는 중앙 아시아의 석유 이권 장악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진단은 독단적 견해가 아니다. 아프간에 정통한 언론인과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아프간이 미국과 열강의 석유와 전략적 이익 쟁탈전의 중심이 된 상황을 주목했다.
국제 언론의 주류도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천착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져 등이 부도덕한 베트남전쟁의 교훈을 일깨우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전투병력 파병논의에 정부는 국익을 먼저 고려하겠지만, 맡은 책무가 다른 언론의 자세는 달라야 할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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