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A 초등학교 5년 박모(11)양은 최근 학교 학예발표회에서 발레 솜씨를 뽐내고 ‘특별상’을 받았다.박양이 3분여 동안의 독무대에 서기 위해 들인 비용은 안무비 30만원, 의상비 75만원, 메이크업비 10만원 등 100만원이 넘는다. 어머니 전모(36)씨는 “행사 뒤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교내 유명 스타가 됐는 데 비용은 상관 없다”고 말했다.
강남의 또 다른 초등학교 학부모박모(36)씨는 며칠 전 딸 윤모(10ㆍ5년)양을 레슨비 15만원의 바이올린 학원에 등록시켰다.
얼마 전 열린 학예회에서 리코더를 연주한 윤양이 고급 연주복을 입고 현악4중주를 하는 친구들을 본 뒤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졸랐기 때문. 박씨는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은 특기를 뽐내는 부유층 아이들만 칭찬해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 같다”고 섭섭함을 표시했다.
초등학교 학예회가 일부 부유층 학부모와 학생들의 ‘돈자랑 잔치’로 전락하고 있다.심지어 일부 학교들은 발레, 오케스트라, 현대무용, 성악 등 ‘귀족 예능’ 위주로 행사 프로그램을 짜고 보다 화려한 장기를 선보인 학생들에게 시상 까지 해 학부모들의 그릇된 경쟁심을 부추기고 있다.
’돈자랑잔치’가 번지면서 서울시내 무대의상 업체와 무용교실 등은 ‘학예회 특수’ 까지 누리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 수십~수백만원 짜리 학예회용 의상을 앞다퉈 구입하고 안무 및 연주 특별 레슨에 거액을 선뜻 지불하기 때문.
서울 종로의 K 전통의상 제작업체 관계자는 “들어오는 주문에 일일이 답할 수 없을 정도”라며“최근 두 초등학생은 150만원 씩을 내고 드라마 ‘여인천하’에 나오는 왕비의 대례머리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돈자랑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예회 폐지론’ 까지 나오는 등 거센반발이 일고 있다. 서울 강남 A 초등학교에는 학예회 다음날 “차라리 운동회나 하라”, “왜 우리 아이를 들러리로 만드느냐” 는 등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학부모 임모(36ㆍ여)씨는 “만원 짜리 꼭두각시한복을 빌려 입고 나갔던 딸아이가 풀이 죽어 할말을 잃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참교육학부모회 송환웅(宋煥雄ㆍ55)모니터국장은 “‘귀족 학예회’는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 기회를 빼앗고 ‘비싼것=좋은것’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을 심고 있다”며 “학예회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