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겸 작가 강홍구씨는 도시 이미지의 사냥꾼이다.현대 도시에서 하찮아 보이는, 일상적 풍경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솜씨 있게 포획해 낸다.
산문집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에서는 '담' 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담장이 경계의 신호이자권력과 부를 감추면서 교묘하게 드러내는 이중적 장치라고 말한다.
근래 관공서들이 잘하고 있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담장 없애기' 캠페인을 들고 싶다.
구청이나 경찰서 등이 담장을 헐어 주민과의 거리감을 줄이는 것이다. 최근 담을 허문 서울 종암경찰서는 그 자리에 잔디와 넝쿨장미, 은행나무 등을 가꾸고 자연석과 벤치를 놓아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
관공서가 담을 허뭄으로써 단절과 불신 등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시민의 민주적 사유와 행동방식에 관 중심의 문화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담장 없애기' 캠페인이 경복궁 창경궁 같은 고궁과 청와대에서도수용되었으면 한다. 강홍구씨가 경복궁과 청와대 사잇길에 대한 소감을 쓰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어쩌다 그 길을 지나자면 조여 오는 느낌에 가슴이 답답하다. 한 쪽에는 접근을 거부하는 고궁의 높은 담, 맞은 편에는 조밀하고 차갑게 세워져 담장과 다름없는 청와대의 쇠창살, 그 사이로 늘어선경비 경찰의 날카로운 눈매….
그길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그 시대착오적인 길은 몇 세기전 쯤에 걸맞은 것일까.
경복궁과 청와대의 담이 시원하게 헐려 그 사잇길이 시민이나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 또는 외국 관광객에게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
한 때 덕수궁 담을 몬드리안 그림 같은 형태의 안이 훤히 보이는 담으로 바꾸었다가 환원한 적도 있다.
덕수궁의 서울시청 방향은 도심의 번잡함을 여과시킬 완충지대가 없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담은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고궁 담은 높이를 아주 낮추거나, 안이 훤히 보이는 철책ㆍ목책 등으로 바꾸거나, 그 자리에 보기 좋은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600년 고도(古都)다운 고궁의 우아하고 장엄한 기운과 기상이 온 도시에 뻗치고 스며들 것이다.
경복궁은 지금 5개권역으로 나뉘어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복원사업이 군주제로의 환원을 꿈꾸는 복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조선 시대의 위용을 되찾는 일과 담장을 허무는 일은 별개의 것이다.
고궁의 이미지는 이제 중요한 문화재이자 시민이 휴식을 위해 찾는 공원에 가깝다.
고궁을 복고주의에 둘러싸인 섬이자 성(城)처럼 존재 시킬 것이 아니라, 시민의 품으로 보내 줘야 한다. 그 열림의 상징으로 담장을 허물어, 시민과 정서적으로 소통되게 하자.
우리 청와대는 워싱턴의 백악관보다 규모가 커 보인다. 백악관은 큰 길가에서 안이 훤히 보일 뿐 아니라, 인기 관광 코스가 되어 있다.
청와대가 담 같은 쇠창살로 둘러쳐진 것은 오랜 남북 대치상황과 국민을 억압하던 군사독재 통치의 산물일 것이다.
이제는 청와대 앞길만 개방할 것이 아니라 쇠 담도 헐고, 그 안 일부까지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청와대가 먼저 국민친화적으로 나설 때 정치적 냉소주의도 줄어들 것이다. 국민은 그런 투명성ㆍ개방성에서 지금이 자유롭고 새로운 21세기라는 점을 거듭 느끼게 될 것이다.
박래부 심의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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