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서울 종로구 사간동 프랑스문화원은 문화의 해방구였다.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경복궁 맞은 편 4층짜리 흰색 건물은 유럽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71년 그 곳에 자리한 뒤 작년 말 문을 닫을 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한결 같이 영화, 샹송, 어문학 등 프랑스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 프랑스문화원이 5일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 맞은 편 우리빌딩 18층에 다시 개원했다.
6월 중순 이미 문을 열고 일반에 공개됐지만 프랑스 외무부 대표와 주한 외교사절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식을 갖고 공식 출범을 알린 것이다.
재개원의 의미는 ‘옛 것과 미래의 결합’이다. 프랑스와 데스쿠엣 프랑스 대사는 “한ㆍ불 교류의 첨병이었던 프랑스문화원의 재개원을 통해 문화 뿐만 아니라 첨단 과학과 기술 등 다른 면에서도 프랑스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새 문화원은 젊어졌다. 우선 외형 면에서 프랑스의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됐다. 옛 프랑스문화원의 하얀 벽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새 공간이 낯설지 모르겠다.
공간 구성의 가장 큰 특징은 환형고리. 빌딩 13층에 있는 프랑스대사관 문화과와 18층 문화원을 커다란 원형 입체 고리로 연결했다.
건물 속에 또 하나의 건물이 들어선 느낌이다. 건축을 맡은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34)씨는 “둥근 고리 속의 공간을 금속과 유리 구조물로 채워 프랑스의 첨단 기술을 상징화했고, 한국 전통 나침반인 패철의 기호와 나무로 만든 격자무늬로 한국의 고전성을 조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문화원을 채운 자료 역시 고전적인 프랑스 문화보다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지 문화를 알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1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투명한 창 너머로 책이 가득찬 서고가 보인다. 기존 문화원의 자료와 장비를 보강해 문을 연 미디어도서관ㆍ정보센터다.
이곳에는 프랑스 문화와 학술에 관련된 최신 자료가 구비돼 있다. 도서 9,000점을 비롯해 각종 CD, 비디오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인터넷검색을 위해 컴퓨터도 설치돼 있다. 40여 종의 프랑스 신문과 잡지, 사진집도 볼 만하다.
정보센터 길혜연(37)씨는 “6월이후 자료를 40% 정도 바꾸는 등 최신 자료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며 “젊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영상예술 자료와 프랑스어를 몰라도 이용할 수 있는 한국어 자료도 계속 구비 중”이라고 밝혔다.
자료를 대출해가려면 연회비를 내고 가입해야 한다. 일반인의 경우 도서회원은 2만 원, 미디어회원은 7만 원이다.
현재 500명정도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하고 개관하는 날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또는 9)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연간 40만 원의 가입비를 내고 특별회원이 되면 각종 행사에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다. 50석 규모의 세미나 및 다용도 행사실이이런 행사를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프랑스어 교사 모임, 출판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9월부터 열리고 있는 프랑스어 회화 동호회는 프랑스인 강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토론을 통해 프랑스어를 익히는 모임이다.
이와함께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만 3세에서 8세 사이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읽기 모임도 마련돼 있다. 또 매주 화ㆍ금요일 오후 5시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디오도 상영한다.
세미나실 이용은 아직 문화원 주최 행사에 국한돼 있다. 준비된 행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원측은 “조만간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입구 오른편에 자리한 ‘에뒤 프랑스’는 한국 학생들의 프랑스 유학을 돕기 위해 마련된 공간. 프랑스 고등교육진흥원이 직접 운영하며 프랑스대학교와 전문학교 등록절차와 프랑스 체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앙드레 조베르 프랑스문화원장은 “일방적인 프랑스 문화전달이 아닌 이해와 교류의 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며 “전문가와 일반인이 모두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자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02)317-8500
/정상원기자 ornot@hk.co.kr
■'르느와르 방'세대 한국여화 주역으로…
경복궁 맞은 편 프랑스문화원(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향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르누아르의 방’을 잊지 못한다.
볼 수 있는 외화라고는 할리우드영화나 오락영화밖에 없던 시절, 그 곳은 장 르누아르의 고전영화와 트뤼포, 고다르 등의 누벨바그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프랑스 감독 장 르누아르의 이름을 딴 문화원 지하 간이영화관에서 16㎜ 흑백 필름을 보며 꿈을 키운 많은 젊은이들 중에는 영화감독 정지영, 박광수, 김홍준, 배창호 등이 있었다.
이들은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출입하거나 ‘토요 단편영화 모임’ 등을 통해 창작 단편영화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프랑스문화원 사단’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특히 당국의 검열을 받지 않는 영화공간이라는 점도 매력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대학생 때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수 많은 영화 때문에 감독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도 “1주일에 두 번 이상 들러 영화에 흠뻑 빠졌다”고 말했다.
1971년 문을 연 뒤 30년 동안 프랑스문화원에서 상영한 영화는 3,000여 편. 그러나 90년대 들어 시네마테크 등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프랑스문화원의 영광은 빛이 바랬다.
75년부터 26년간 프랑스문화원 대외협력과에 근무했던 양미을(50)씨는 문화원의 산 증인.
현재 프랑스대사관 문화홍보관으로 근무하고있는 양씨는 “그 당시 프랑스문화원은 많은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몰려 문화의 향기가 넘쳐났다. ‘금지된 장난’ 같은 영화를 상영할 때면 동십자각 앞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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