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성(聖)금요일의 일이다.해마다 이 고난 주간 마지막 날이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는 바그너 최후의 음악극 ‘파르시팔’을 연주한다.
나도 객석 좌측 날개에 자리를 잡았다. 내 곁의 한 독신 노인은 누렇게 바랜 손바닥만한 책을 펼친 채 눈으로 본문을 따라가며 성악가의 절창을 듣고 있었다.
휴식시간에 그 책을 좀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그 책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결혼 때 지니고 온 처녀적 유물이라고 말했다.
표지엔 ‘1920년 그레테 슈나이더’라고 쓴 어머니의 처녀 때 글씨가 남아 있었다.
유명 출판사 레클람에서 나온 40쪽짜리 얇은 책이었다. 그레테란 이름의 그 부인은 바이마르 공화국, 히틀러의 제3제국, 그리고 동독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과 그 시대마다 토해대는 광기, 함성, 이념의 불길한 슬로건들 속에서도 성금요일이면 이작은 책을 들고 음악당을 찾아 각기 다른 시대가 시대정신에 따라 해석한 파르시팔을 묵묵히 들어왔을 터이다.
그리고 이제 노인인 아들이 다시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2001년 통일 독일이 해석해 낸 이 시대의 파르시팔을 듣고 있는 것이다.
1210년 독일 작가 에센바하가 완성한 소설 파르시팔을 각색한 이 음악극은 ‘그랄(성배ㆍ聖杯)-유토피아’의 의미를 추적해 가는 젊은 기사 파르시팔의 장엄한 인식과정이 충격적이다.
종장인 3막에서 파르시팔은 화살의 독으로 죽어가는 성배의 성(城)의 지배자 암포르타스에게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에게 상처를 준 그 창만이 그대의상처를 고칠 수 있다.”
확실히 이곳 구 동독 시민들의 일상에는 세월과 이념을 초월해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 어떤 황홀한 일상의 전형 같은 것이 있다.
새해 첫날이면 이곳 사람들은 게반트하우스로 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듣는다.
이는 동독 시절이건 통일 후이건 세월을 초월해 지켜온 양보할 수 없는 견고한 예식이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전통 설 음식인 ‘푸른 아가미의 잉어’를 먹는다.
3월엔 500년 전통의 책박람회에 간다. 4월의 마지막 밤이면 인근 하르츠산맥브로켄 산정에서 열리는 ‘발푸르기스의 밤’에 간다.
마녀들이 해발 1,142m의 이 산정 거대한 바위에 희생물을 바치고 나면 붉은 코트의 악마 장콜북이 등장해 광란의 무도회를 선포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콜북의 문학적 얼굴이다.
라이프치히의 가을은 이 도시의 심장인 클라라 체트킨 공원 중앙호수에 눈부신 백조들이 날아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토마스소년합창단이 잊을 수 없는 미성(美聲)으로 부르는 바하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움’을 듣기 위해 도심의 토마스교회로 몰려든다.
바하, 멘델스존, 바그너가 생전에 남긴 지독한 향기 때문일까. 시민들의 일상은 확실히 음악과 운명적으로 연결돼 있다.
주말엔 연극 ‘파우스트’를 보러간다.
항상 매진인 이 작품의 공연시간은 무려 아홉 시간이다. 더구나 에필로그는 공연장인 라이프치히 극장을 벗어나 시내의 한 공동묘지에서 진행된다.
시민들은 우산을 들고 특별버스에 오른후 묵묵히 묘지로 행한다. 거의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 시작돼 밤 10시에야 끝이 나는데 휴식시간에는 아우어바하 동굴식당에서 특별메뉴인 ‘메피스토펠레스정식’으로 식사를 한다.
이 식당은 파우스트 1부에 등장하는, 괴테 생존 당시 ‘학생들에게 외상술을 주던’ 500년 된 바로 그 학사주점이다.
바하는 1723년부터 1750년까지 27년간 토마스소년합창단의 지휘자로 봉직했다. 이 합창단이 탄생한 것이 1212년이니 이미 790년의 역사를 지닌 셈이다.
바하 이후 16대 토마스소년합창단지휘자는 종교음악가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46) 교수이다.
그는 통일 후인 1992년 생애 최고의 소원인 이 합창단의 지휘자로 선발됨으로 써라이프치히의 음악적 수호성인인 바하의 후계자가 됐다.
빌러 교수는 말한다.
“토마스소년합창단과 이곳 시민들은 이미 790년간 음악이라는 이름의 언어로 인생, 고통, 기쁨, 영원을 소통해 왔습니다. 동독의 무자비한 독재시절에도 매주 일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종교적 기념일마다 이 합창단의 노래를 듣기 위해 시민들은 토마스교회로 몰려왔습니다. 토마스소년합창단이 있는 그 곳, 그것은 그시절 새로운 의미의 ‘희망의 게토(유대인 집단거주지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안식처의 의미로 쓴 듯함)’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이념과 혼돈을 넘어 음악이 계시하는 신성, 영원성을 만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통일 후 11년, 21세기가시작되자마자 세상은 돌연 전쟁 소식으로 끓어오릅니다. 지금 세상에 가득찬 것은 수색, 잠복, 추적, 폭력, 학살, 죽느냐 죽이느냐 같은 사냥꾼의 언어입니다. 이럴 때 변성기 이전 그 순수의 시대를 상징하는 이 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인류의 변성기 이전 그 무죄하던 순수의 시간을 추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토마스소년합창단원들은 말하자면 어린 예언자들이지요.”
독일인의 농담에 자주 등장하는두 가지 행운이 있다.
첫째는 ‘늦게 태어난 행운’이고 또 하나는 ‘서독에 태어난 행운’이다.
히틀러에게 악용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안도감과 참담한 동독 역사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희망의 원리’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위장(胃腸)이란 가장 급히 기름을 채워 넣어야 할 첫 번째 램프이다.
”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우선은 처먹는 일이고 도덕은 그 다음에 오는 거지”라고 노래했다.
통일 직전 동독 경제는 붕괴직전이었다. 동독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무장병력 앞에서 침묵시위를 함으로써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인간성을 녹초로 만드는 자유와 물질의 궁핍상태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는 출애굽적 인식, 그것이었다.
당시 그들에겐 통일이란 자유와 풍요의 동의어였다.
그들은 말한다. “동독 시절 우리는 압축 종이로 만든 자동차 트라반트 한 대를 얻기 위해 무려 15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완전한 통일을 얻어내는 데야 그보다는 더 오래 기다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성금요일의 파르시팔의 마지막 노래 “그대에게 상처를 준 그 창만이 그대의 상처를 고칠 수 있다”처럼 혁명적 참을성으로 평화적통일을 이루어낸 구 동독 시민들은 바로 그 혁명적 참을성만이 통일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재독 소설가
-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