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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사라져 가는 것들 그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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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사라져 가는 것들 그 낭만에 대하여…

입력
2001.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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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스산한 저녁, 시린 목을 옷깃 속에 묻고 귀가 길을 재촉하는 이들의 뒷모습이 안스럽고, 도심의 휘황한 불빛마저도 마냥 처연해 보인다. 스러져가는 시간이 그저 속절없고, 떠나는 모든 것들이 아쉬운 계절. 곁에서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더라도, 떠날 땐 언제나 못 나눈 정이 회한으로 남는 법이다. 그러니 이맘 때면 우리 주변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것들을 새삼 되돌아보며 저무는 늦가을의 정취에 한번 취해 볼 일이다. 그 쓸쓸함조차 낭만이라면…. /편집자 주# 풍경 1 - 아코디언 선율에 탄 ‘홍도야 우지마라’

인천 계산역 인근의 주점 ‘청춘시대’. 엉성한 판자벽에 옛날 영화 ‘별아 내 가슴에’의 빛 바랜 포스터가 붙여진 실내가 완연한 1960, 70년대식 분위기를 자아내는 실내. 왁자지껄 술잔을 주고받던 초로의 손님들이 돌연 말을 멈추고 한 편으로 돌아 앉는다.

깊게 눌러쓴 흰색 중절모에 연분홍색 셔츠, 노란색 재킷, 반짝반짝 광을 낸 백구두차림의 노(老)악사박성추(朴性湫ㆍ64)씨가 낡은 아코디언을 안고 등장한 것.

박씨의 반주에 맞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50대 여가수가 감칠 맛나게 꺾이는 뽕짝(트로트)을 부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카, 좋네” “옛날 노래는 역시 아코디언이 제격이야”라는 등의 감탄사들이 추임새처럼 튀어 나온다.

3~4곡을 거쳐 ‘홍도야 우지마라’가 흘러나오자, 더 이상 흥을 억제하지 못한 손님들이 너나 없이 무대 앞으로 튀어 나왔다. 빼앗을 듯 서로 마이크를 돌려가며 부르는 왕년의 구성진 가락 속에 취객들은 모두 ‘청춘시대’로 돌아갔다.

박씨는 30여년을 아코디언과 살아 온 떠돌이 악사. “70년대 후반 청와대 근처 한 요정에서 일하던 밴드마스터 시절, ‘살살 간드러지게 파고드는’ 아코디언 소리에 기생들이 온통 매달리기 일쑤였지. ‘동대문살롱’에서 일할때는 풋내기 가수 조미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른 기억도 있어.”

한 때 종로, 충무로, 낙원동 등 서울 도심에만 동료들이 500명을 넘었지만,전자반주기기 등에 밀려 지금은 수도권 주변을 통틀어야 10여명 밖에 안된다는게 그의 설명.

“그래도 아직 일주일에 3~4일은 일거리가 있어서 근근히 생계는 돼. 대개 시장통 선술집 등이긴 하지만.” 박씨는 띄엄띄엄 빨간 동그라미 표시(출장 연주스케줄)가 쳐진 수첩을 짚어 보고는 주섬주섬 아코디언을 챙겨 들었다.

# 풍경 2 - “멋진 DJ와 함께 팝송을”

1일 밤 9시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뒤 음악카페 ‘더 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다운타운의 인기DJ 저 00입니다.”

실내 한 켠 뮤직박스에 올라 앉은 DJ의 ‘고색창연’한 자기소개가 끝남과 동시에 1960년대 비틀즈 초기의 명곡 ‘I wanna hold your hand’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30~4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인 손님들이 요란한 박수와 휘파람, 어깨춤으로 호응하면서 실내는 일순 예전 다운타운 음악다방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1년 전부터 단골이라는 손님 김모(43·회사원)씨는 “처음 우연히 들렀을 때 서울도심에 이런 음악다방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뜻밖이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며 “올 때마다 옛날 대학시절의 향수에 푹 젖는다”고 즐거워 했다. 그는 이날 맨하탄스의 ‘Kiss and say good bye’를 신청곡 메모쪽지에 적어 DJ에게 건넸다.

“젊은 시절 톰 존스와 패티 페이지 마니아로 종로 무교동 일대의 음악다방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는 업주 이종렬(56)씨는 “5년 전 퇴직을 하고 나서는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가게를 냈다”고 말했다.

DJ 임광철(33)씨는 “손님들과 함께 느낌을 직접 교류하는 듯한 맛이 남다르다”며 “아직도 서울에 DJ가 있는 음악다방이 한 구에 한 두곳 정도는 있다”고 전했다.

# 풍경 3 - 아직도 주산학원이 있다니

30대 후반 이후 세대라면 국민학교나 중·고교시절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은 꼭 배워야 했던 주산. 하지만 지금은 전자계산기와 컴퓨터의 보급으로 상업계 고등학교에서도 잊혀진 지오래인 과목이 됐다. 그런 주산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직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대광보습학원이 그 곳. 하지만 학생은 달랑 한명뿐이다. 저녁 시간 초등학생 여아에게 열심히 주산과 암산법을 가르치고 있는 원장 이완식(李完植· 48)씨.

“이 학생 부모가 며칠의 수소문 끝에 겨우 여기를 찾았답니다. 수학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암산능력이 중요하고, 암산능력을 기르는 데는 주산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물론 요즘 주산만을 정식 과목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없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 때문에 80년대까지는 서울에만 7,000~8,000곳의 주산 전문학원이 성업을 했지만, 현재는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고작 30 곳 정도의 학원이 주산을 그것도 특별과목으로 가르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저도 주산학원을 하다 보습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하지만 찾아오는 학생이 있으면 개인지도를 합니다. 물론 1년에 한 두 명 정도지요.”

# 풍경 4 - 고단한 삶의 쉼터, 동시상영관

나른한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시장 근처의 동시상영 영화관 앞.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10대 2명이 한참을 망설인 끝에2,000원씩을 매표창구에 밀어 넣었다. 주인이 나와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머쓱한 표정으로 돈을 도로 받아들고는 돌아선다.

실내에 들어서면 매캐한 담배냄새에 바닥에 어지러이 널린 휴지조각과 담배꽁초,움직일 때마다 삐걱이는 의자소리….

오징어와 땅콩 따위를 손에 쥐고 단돈 500원에 2편의 영화, 혹은 영화 한편에 쇼 한편을 보여주던 그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싼 값에 피곤한 삶을 잠시 잊으려는 남성관객이 주류인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영화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돌고 돈 ‘명화’들이 마지막 숨을 다하기 전 비가 줄줄 내리는 모습으로 올려지는 경우는 이제 없다. 극장주인의 말. “그래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영화들을 가져다 상영했지요.

지금은 그런 걸로는 장사가 안돼 비디오용 ‘성인영화’를 주로 틉니다.오후 6시 이후에는 시간을 때우려는 30대 후반 이상의 화이트 칼러들도 가끔 들르긴 해요. 그래도 간신히 현상유지만 될 정도입니다.” 영화계에서는 전국적으로 20곳 정도의 동시상영관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시상영관만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다. ‘벤허’ ‘십계’ 등 장쾌한 스케일의 70㎜ 영화상영도 가능했던 웅장한 화면의 단스(단일 스크린) 영화관들도 최신시설의 멀티플렉스(복합 상영관)에 밀려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극장협회에 따르면 서울시내의단스 개봉관은 전체 60여곳 중 불과 7~8곳.

2일 저녁 서울 중구 초동 스카라극장 앞에서 아내와 함께 마지막회 표를 끊던 이모(50ㆍD기업 이사)씨는 “여기를 오면 대한뉴스만 없어졌을 뿐 스크린 음향 등 대학시절 영화 추억이 고스란히 떠올려져 좋다”고 말했다.

이런 정서를 믿기 때문일까. 한 영화관 사장은 “대형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에 익숙한 중ㆍ장년층이 있는 한 단스 영화관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풍경 5 - 사랑과 고뇌가 녹아 든 막걸리 한사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승동교회 뒷편 골목은 세칭 ‘피맛골’로 알려진 유명한 주점가.이곳을 지나다 보면 ‘학사주점’이란 간판을 족히 네댓 개는 마주치게 된다. 대부분 호프집인 ‘아류’들을 피해 ‘진짜 원조’ 막걸리 학사주점을 찾는가장 빠른 방법은 가장 허름한 집을 찾는 것.

‘고갈비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집은 서울에 남은 몇 안 되는 정통 막걸리집이다. 꾀죄죄한 건물 외양, 베니어 합판을 얼기설기 엮어 짠 내부는 그야말로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다. 막걸리를 담아오는 그릇 역시 한곳이 우묵하게 들어간 옛날 양푼 그릇.

주흥이 도도해지거나, 혹은 시대적 감상에 젖은 취객들이 벽지 곳곳에 써 남긴 “박00,김00 사랑에 취하다” “혁명의 시대는 끝나는가” 등의 낙서에서조차 1960, 70년대식 감성이 흥건하게 묻어난다. 손님들은 물론 40~50대의 장년층이 주류지만 뜻밖에 대학신입생 등 젊은 층도 적지 않다.

전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해 80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는 현재의 주인은 “우리집을 찾는 손님은 그야말로 낭만에 취하고 싶어 오는 사람들이다. 언론에 자꾸 등장하면 그런 낭만이 사라진다.”며 한사코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이민주기자

mjlee@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포마드향 가득한 이발소…"뻥이요" 뻥튀기 아저씨…

밀레의 ‘만종’이나키치적 풍경화에 진한 포마드와 염색약 냄새로 상징되던 동네 이발소. 미용실과 퇴폐 이발소, 사우나 이발소에 밀려 급속히 쇠락하고 있지만 서울의 100여곳을 포함, 전국에300곳 정도의 ‘전통 이발소’가 아직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25년째 ‘우리 이발관’을 운영중인 박유병(朴裕秉· 60)씨는 “오랜 지기(知己)나 만나면서 용돈이나 번다는 생각”이라며 “이젠 이발학원도 다 망해서 10년만 있으면 이발소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유난히 아이들의 불장난 소리로 시끄러웠던 동네 목욕탕도 마찬가지.종로구 소격동의 민우탕도 그런 곳.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70년째 그 자리에 있는 전형적 동네 목욕탕이다. 친숙한 ‘싸구려’ 로션 냄새와 액자속 고색창연한 영업허가증이 향수를 자극한다.

시설이라야 5평 남짓한 욕실 안에 온탕 욕조 하나와 샤워꼭지몇 개가 전부. 낮 시간 등 돌리고 앉아 느리게 물을 끼얹는 할아버지 한 분이 쓸쓸하다. 매표구의 할머니는 “수지가안 맞아 팔려해도 도무지 작자가 나서지 않아 눌러앉아 있다”고 혀를 찼다.

초등학교 운동장과 동네 골목길에서 구슬이나 딱지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사라진 지는오래. 컴퓨터 게임 등의 전자오락기기가 아이들을 모조리 흡수해 버린 탓이다.

하지만 서울 창신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여전히 이런 물건들을 팔고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구슬을 사가곤 해요, 어디에 쓰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재로 쓰나? 아무튼 놀이감으로 사가는 애들은 없어요.”

마지막으로 뜻밖에 남아있는 먹거리 몇. “엄마, 10원만”하며 돈을 타내 사먹던 눈깔사탕, 혹은 알사탕은 일반 가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서울 동대문ㆍ남대문 시장 등에는 여전히 도매상들이 있다.

동대문시장의 한 도매상은 “서울시내에 100여명 가량이 봉지당(10~15개) 1,000원에 알사탕좌판을 하고있다”고 전했다.

서울 주택가에서도 운 좋으면 뻥튀기장수를 발견할 수 있다. 봉고차 뒤에 ‘기계’를 싣고 도봉구 방학동 일대를 도는 김모(45)씨는 “뻥이요” 소리를내지른지 벌써 20년. 뻥튀기 기계의 모양은 예전과 같지만 손잡이로 돌리는 대신에 모터로 작동되고 가스로 불이 지펴진다.

“저처럼 봉고차를 모는 뻥튀기행상이 서울시내에 한 100명 가량 있을 겁니다. 충북 옥천이나 전북 정선 등지의 재래시장에서는 지금도 뻥튀기 장수들이 어엿하게 터를 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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