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이 대학교수이다 보니 남 앞에서 떠드는 일이 내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이런 저런이유로 다른 동료교수들보다 강의를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얼마 전부터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중고등학교, 공공기관, 기업체, 또는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강연할 기회도 많아졌다.
나는 강의 준비에 남달리 신경을 많이쓴다.
졸렬하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세워놓은 내 '명강의 명성'에 금이가는 게 싫어서 악착같이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명색이 동물행동학자이다보니 나는 우리인간의 속성을 다른 동물들의 행동과 비교하는 일을 자주 한다.
인간도 엄연한 한 종의 동물인 만큼 기본적으로는 서로 그리 다를바 없지만, 인간의 행동에는 이 세상 그 어느 동물사회에서도 볼수 없는 진기한 것들이 몇 가지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강의를 하고 강의를 듣는 행동이다.
이 세상 그어느 동물들이 한시간 이상 그들 중 한 마리를 앞에 세워 그혼자만 떠들게 하고 다른 많은 동물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듣는단 말인가.
침팬지 사회에도, 돌고래 사회에도,또 개미사회에도 그런 기이한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인간만이 갖고있는 참으로 괴팍한 풍습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 강의라도 졸고있는 사람이 있거나 몸을 비트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바로이 묘한 인간행동에 관한 얘기를해준다.
정상적인 동물로는 도저히 할 수없는 참으로 힘든 일을 여러분들이 지금하고 계신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듣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동물사회에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 일이 또하나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 몇몇이 모여 앉아 그 사회의 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한 개체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일이다.
동물사회라고 해서같은 종족을 살해하는 일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조직적으로 살인을 논의하고 실행하며 합리화하는 제도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못지않은 그리고 어떤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더 진보한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개미나벌 사회는 물론 침팬지나 돌고래의 사회에도 우리의 사형제도처럼 '극악한 제도살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인 구돌 박사는 아프리카 곰비에서 야생침팬지들을 연구해온 지난 40여년 중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때를 소아마비 때문에 자신이 연구하던 침팬지들 상당수가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평생불구자로 남거나 끝내 사망했을 때라고 말한다.
그때 소아마비에 걸려 가장 처참한 몰골로 생을 마감한 맥그리거씨라는 수컷이 있었다.
구돌 박사는 자신이 아끼던 침팬지가 불구가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는 것도 참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보다는 그를 대하는 다른 수컷들의 비정함에 더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한때는 그 사회에서 잘 나가던 지위높은 수컷이었지만 일단 불구가 되자 다른수컷들이 때를 만났다는 듯 돌격과시행동을 보이며 그를 윽박지르더라는 것이다.
맥그리거씨가 각종 수모도 겪고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수컷침팬지들이 모여 앉아자기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개체를 제거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만일 소아마비가 전염성질병이라 자기들 모두가 그로 인해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과연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그를 그끔찍한 고통으로부터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과 다른 침팬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에게 총뿌리를 들이댄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유일한 침팬지는 그의 혈육으로 추정되는 험프리라는 수컷뿐이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를 마지막까지 찾는 우리네 가족들처럼.
이 지구라는 행성에사는 다른 모든 동물들과 달리 우리는 과연 무슨 근거로 함께 살던 같은 사회의 구성원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일까.
이것역시 우리만이 유일하게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우리의 오만함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걱정해본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오로지 그분만이 우리의 생명을 거둘 수 있으련만 어찌하여 우리가 감히 그분의 특권을 도용할수 있단 말인가.
그분이 이 많은 생명들 중 우리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의 흉내까지 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우리 나라에 근대사법제도가 확립된 후우리 스스로의 '신의 심판'을 받은 첫 사형수는 동학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이었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두1,600여 명의 우리동포들이 우리 손에 목숨을 잃었다. 현재 세계전체로 보면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들이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나라들에 비해 약 20여 개정도 더 많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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