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3일의 최고위원 간담회를 7일로 연기한 것은 특별한 쇄신책이 없다는 반증이자, 권력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연기 발표가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의 불참 표명 이후 나왔다는 선후관계가 ‘대통령의 외국 방문 준비를 위해서’라는 공식 해명을 궁색케 하고 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브루나이 방문 일정은 어제 오늘 잡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기의 속사정은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이 최고위원의 불참 표명이 직격탄이 된듯하다. 일부가 불참할 경우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아무리 좋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결론이 나온다 해도, 이는 ‘반쪽’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난마처럼 얽힌 국면을 시원하게 꿰뚫을 해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적 쇄신 요구를 무시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데다 다른 방책도 없는 상황에서 최고위원 간담회가 열리면 새로운 분쟁의 소지만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고위원들의 일괄 사퇴, 청와대의 만류 분위기, 일부 최고위원들의 불참 표명, 간담회 연기 등 일련의 과정은 여권의 난맥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이상주(李相周) 비서실장은 2일 “(민주당의) 정당한 요청은 수용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해 향후 의사결정권이 상당부분 당에 넘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통령의 수습 방향은.
“브루나이 일정(6일 귀국) 후 의견을 수렴, 결론을 내릴 것이다. 비공식적 요구에 지도자가 흔들릴 수는 없다. 당 의견이 공식 기구와 절차를 밟아 올라오면 수용할 것이다.”
-청와대 비서진이 사의를 표명할 의사는 없나.
“사표를 내 행정공백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다.”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 등이 지목되는데.
“잘못과 비리가 있으면 인사조치 해야 하지만 먼저 구체적 잘못이 적시돼야 한다.”
-인적 쇄신에 신중하다면 다른 조치가 무엇이 있는가.
“대선 후보 결정시기, 방법, 지방선거 문제, 당의 조직이나 인적 구성 등에 대해 당에서 의견을 올리면 받아줄 것이다. 당이 정치를 주도할 것이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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