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김병현, 그리고 양키스 모두에게.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22)이 이틀 연속 홈런 악몽에 울었다. 김병현은 이틀 연속 9회 2사 후 통한의 홈런으로 월드시리즈 첫 세이브 기회는 물론 팀의 승리도 날려보냈다. 뉴욕 양키스는 연장 12회말 알폰소 소리아노가 끝내기 안타를 터뜨려 3_2로 또다시 역전승, 월드시리즈 홈 연승행진을 10경기로 늘렸다. 양키스는 이로써 7전4선승제의 시리즈에서 3승2패를기록, 대망의 월드시리즈 4연패(連覇)에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봅 브렌리 애리조나 감독은 2일 오전(한국시간)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제97회 월드시리즈 5차전 선발에 바티스타를 내세웠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양키스 선발 마이크 무시나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데뷔 후 첫 월드시리즈무대에 선 바티스타는 8회 2사까지 5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승리투수를 눈앞에 뒀다. 전날 61개의 공을 던져 등판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봅 브렌리 감독은 김병현에게 다시 등판 기회를 주는 승부수를 던졌다.
9회말 세번째 투수로 나온 김병현은 다소 긴장한 듯 선두타자 호르헤 포사다에게 좌익수 실책이 겹친 2루타를 내주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인 스펜서를 유격수 땅볼로 잡고 6구까지 가는 실랑이 끝에 척 노블락을 삼진으로 솎아내 전날의 악몽을 벗어나는 듯했다. 월드시리즈 첫 세이브에 아웃카운트 1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98년 월드시리즈 MVP 스콧 브로셔스가 타석에 들어섰다.브로셔스는 볼카운트 0_1에서 김병현의 슬라이더를 통타, 왼쪽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쏘아올려 연장으로 몰고갔다.
애리조나는 5회초 솔로홈런 2방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선두타자 스티브핀리가 볼카운트 2_1에서 상대선발 무시나로부터 선제 우월홈런을 빼앗자 2사 후 생애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출장한 포수 로드 바라하스가 좌측담장을넘겨 2_0으로 앞서나갔다. 양키스는 9회 동점을 만들 때까지 적시타 불발로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2_2동점인 12회말 양키스는 노블락의 중전안타와 브로셔스의 희생번트로 만든 1사2루의 기회에서 소리아노가 극적인 우전안타를 터뜨려 연장 승부를 마감했다. 6차전은 좌완투수 앤디 페티트(양키스)와 랜디 존슨(애리조나)의 맞대결로 4일 오전8시30분 피닉스의 뱅크원볼파크에서 열린다.
정원수 기자
nobleliar@hk.co.kr
■김벼현 왜 맞았나
이틀연속 9회 2사후 홈런을 맞아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김병현에게 월드시리즈는 가혹한 시험대이다. 메이저리그 입성 3년만에 '꿈의 구연'월드시리즈 무대에 섰지만 22세의 어린 선수로는 평생 잊기 어려운 좌절을 두 차례나 맛봤다.4,5차전을 지켜본 국내 전문가들은 경험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든다.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김병현의 부진이 예상보다 심하다.
올 시즌 그는 노장 매트 맨타이의 뒤를 이어 팀의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올해 23번의 세이브기회에서 18번을 성공시켰다. 또 방어율도 2.94로 수준급이다. 게다가 피안타율(0.173)은 내셔널리그 구원투수중 당당히 1위이다.
문제는 제구력이었다.올해 98이닝동안 김병현은 44개의 볼넷을 내줬다.마무리투수는 삼진을 잘 잡아내야 하지만 역으로 볼넷도 적어야 한다. 하지만 김병현은 그렇지 못했다. 홈런 2방을 맞은 4차전을 보면 김병현의 제구력문제는 금방 드러난다.김병현은 이날 13타자를 상대했는데 7명에게 풀카운트까지 몰렸다. 볼카운트가 2-3일 경우 타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 이날 62개투구중 25개가 볼이었다. 그만큼 김병현이 제구력이 안돼 어렵게 승부했다는 반증이다. 2일 5차전에서 브로셔스에게 홈런을 허용한 이유도 슬라이더를 마음 먹은 대로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올 시즌 김병현이 2이닝을 넘게 던진 경기는 단 한번밖에 없었다. 또 투구수도 메이저리그 데뷔후 두번째로 많았다.그러에도 불구하고 5차전에 또 등판했다. 김병현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 시즌 중 3일간격으로 등판하던 김벼현은 내셔널리그 챔피언시리즈가 끝난 뒤 9일만인 1일 경기에 나섰다. 경기감각이 떨어질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경기감각이 떨어지면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
정연석기자
■김병현 인터뷰
너무 충격이 컸던지 김병현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미국기자들이 “혹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냐”고 묻자 더욱 얼굴이 굳어졌다.
-이틀 연속 팀의 승리기회를 날려버렸다.
“4차전과 똑 같은 일이일어날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됐다.”(비교적 담담하게 말했으나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브로셔스에게 홈런을 맞은 구질은 무엇이었나.
“슬라이더였다. 볼은 제대로 들어간 것같은데 상대가 노리고 있다가 친 것 같다.”
-오늘도 등판하리라 생각했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준비가 돼 있었다. 오늘 아침에 브렌리 감독이 던질 수 있겠느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6차전에서도 던지라고 하면 나를 믿어준 것이기 때문에 올라가 던지고 싶다.”
-9회말 동점 투런홈런을 맞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와 뭐라고 말했나.
“괜찮다. 아직 경기가끝나지 않았다며 위로의 말을 해줬다.”
-이틀 연속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는데.
“야구를 시작한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정말 믿기지 않는다. 나 자신에 실망했다.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월드시리즈에서 우리 팀이 우승하지 못하면 내 탓이다.
정원수 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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