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서 종묘공원까지 이어진 폭 2m 남짓한 종로의 뒷골목 ‘피맛골’.인근 사무실에서 쏟아져나온 샐러리맨들이 출출한 속도 채우고, 한잔 술로 스트레스도 풀 겸 삼삼오오 즐겨 찾는 서울의 대표적인‘먹자골목’이다.
원래는 조선시대 고관들이 종로에 행차할 때 예를 표해야 했던 서민들이 이를 피하기위해 종로변 행랑뒷쪽으로 낸 길이었다.
그래서 좁은 골목엔 자연스레 서민들을 위한 국밥집과 주막들이 들어섰고, 모습만 달라졌을 뿐 그 전통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말을 피한다’는 피마(避馬)란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다.
피맛골의 시작을 알려주는 교보문고 앞. 버거킹 건물옆에 선 청사초롱 안내판을 지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집이 ‘열차집’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돼지기름에 지진 녹두 빈대떡과 시원한 조개탕이 별미다.
건너편의 ‘아바이순대’도 피맛골의 터줏대감. 순대와 각종 전에 서비스로 술국이 나오는 ‘혼합’ 안주는 보기만 해도 푸짐하다.
골목 끝에 자리잡은 ‘서린낙지’는 길 건너편의 ‘이강순 실비집’과 더불어 장안의 대표적인 낙지전문점이다.
매운 낙지볶음과 콩나물 무침을 베이컨, 소시지, 야채 등과 한데 익혀 먹는 ‘불판’은 이 집의 대표메뉴.
먹고나면 속이 쓰릴 정도로 매운 낙지볶음과 조개탕으로 유명한 ‘이강순 실비집’은 겉으론 허름하나 전국에 체인점을 29곳이나 두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수십년째 그대로인 탁자와 등받이 없는 기다란 의자에는 연신 땀을 닦아가며 매운 낙지와 씨름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피맛골의 명물은 카페 ‘시인통신’이다. 온통 낙서로 가득한 2층 허름한 공간에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낭만파 샐러리맨들에게 인기 만점의 쉼터다.
술은 냉장고에서 스스로 꺼내 마시고 안주가 떨어지면 바닥을 굴러 주인을 부른다. 문인과 예술가, 언론인들을 단골로 갖고 있는 시인통신의 구석구석에는그들이 논했던 삶과 인생, 예술의 흔적이 남아있다.
청진동 해장국골목을 건너면 ‘대성양곱창’이 퇴근길 샐러리맨들을 기다린다.
특별 양념으로 버무린 양곱창을 찾는 단골들로 늘 만원인 곳이다. 바로 옆 ‘신승관’은 30여년 이곳을 지켜온 토박이 중국집으로 시금치로 색을 낸 초록빛 물만두가 특이하다.
YMCA회관 옆골목을 조금 오르다 보면 한옥을 개조한 ‘시골집’을 만난다.
마당 한가운데 가마솥에서 끓여내는 장터국밥은 옛 장터에서 맛보던 국밥 맛 그대로다. 연탄불에 구워내는 석쇠불고기도 인기 메뉴.
YMCA회관 옆에서 시작되는 서피맛골은 학사주점 골목으로 유명하다.
20여곳이 넘는 주점들이 늘어선 골목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이곳의 강점은 저렴하고 푸짐한 인심. 골목의 샛길을 따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은 간판없는 막걸리집이 대표적이다.
고갈비와 막걸리 등 단순 메뉴에 불편한 의자와 찌그러진 그릇에도 불구하고 함바집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 이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동피맛골로 불리는 피카디리극장 옆 골목은 돼지머리를 삶고 해물을 끓이는 냄새로 가득차 있고 단성사 옆 귀금속상가 골목은 대낮에도 보석을 비추는 조명으로 눈이 부시다.
종로 양쪽으로 형성됐던 피맛골은 도로확장과 개발로 교보문고와 종묘공원까지만 그자취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속되는 개발 물결에 위태위태하다. 이미 청진 6지구엔 재개발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피맛골을 지켜온 세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세입자 대표 한귀남(57ㆍ여)씨는 “계획대로 20층의 대형건물이 들어서면 주변의 피맛골 정서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며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서민의 골목이 훼손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의 뒷골목인 피맛골은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입맛이 까다로운 샐러리맨들로 붐빈다. 조선시대엔 고관들의 행차를 피할수 있는 서민들의 거리였지만 지금은 샐러리맨들의 먹자골목으로 변했다.
/조영호기자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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