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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물치와 이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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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물치와 이무기

입력
2001.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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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에 쓰는 미꾸라지를 수송할 때, 어항탱크에 가물치를 함께 집어넣는다고 한다. 미꾸라지의 천적을 투입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어항에 미꾸라지만 넣으면 대부분 죽거나 기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가물치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살아 남기 위해 부단히 몸을 놀려 선도(鮮度)가 유지된다."

얼마 전 진 념 부총리가 은행 대형화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가물치론'이다. 가물치론이 먹혀 들기 위해서는 물론 가물치가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해외 매각마저 번번이 실패해 골칫거리가 되어 버린 오늘날 서울은행의 뿌리를 파보면 '합병' 전력(前歷)이 나온다.

1976년 신탁은행과의 통합은 당시 얼마나 힘찬 출발이었던가. 그러나 이것은 또한 양대 파벌간 권력투쟁의 서막이자 악몽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한지붕 두가족'의 원초적 인적갈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해 골병이 들어버린 서울은행의 자화상은 합병의 함정을 우리가 직접 목격하고 있는 사례다.

■기업간 합병(M&A)은 잘하면 약이 되지만, 반대로 독이 되기 십상이라는 게 계량화한 정설이다.

특히 영업 성격상 맨파워의 조화 여부가 성공의 관건인 금융기관의 합병은 확률이 더 낮아 거의 도박에 가깝다 한다.

최근 수년간 세계각국에서 이뤄진 40여건의 은행합병 사례를 조사해 보니 성공률이 25%에 불과했다는 해외 보고서도 나와있다.

인력감축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병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는 얘기다.

■물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일은 아니다.

1999년 독일 도이체방크와 미국 뱅커스트러스트의 합병 같은 것은 대서양을 뛰어넘는 대모험에 걸맞은 대성공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한 새로운 '국민은행'이 어제 공식 출범했다.

우리도 세계수준의 대형은행을 갖게 됐으니 일단 남부럽지 않게 됐지만 한편으로 뒷머리도 뻐근해진다.

혹시라도 이 가물치가 용이 못된 이무기로 전락해 대마불사의 화근이 된다면또 하나의 하이닉스가 잠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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