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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문학 '육신록'300년만에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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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문학 '육신록'300년만에 '햇빛'

입력
2001.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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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인현왕후전''계축일기'로 대표되는 우리 궁중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고서가 1일 공개됐다.공중문학 연구가인 홍기원씨가 공개한 '육신록'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사육신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한글본이다.

글 쓴 이는 홍씨의 11대 조모인 민씨(1633~1706).수양대군(세조)이 단종으로부터 선위 형식으로 왕좌를 빼앗자 이에 격분해 단종의 복귀를 도모한 사육신을 처형하는 과정을 여성의 감수성으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민씨는 선조의 첫째 딸인 정명공주의 둘째 아들 홍만형의 처이며 숙종의 부인 인현왕후이 중고모이다.

가로 19.5cm,세로 22.5cm크기에 각면 12행,각행 15~20자로 쓴 이 책은 단종이 임금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됐다가 사후 단종으로 추복된 숙종 24년(1698년)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육신에 관한 책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1454~1492)이 쓴 한문본 '육신전'이 있으나 당시의 상황을 문학적 필치로 상세하고 생생하게 전하는데 있어서는 이 육신록을 따르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책에는 정사에서 볼 수 없는 기술이 많아 문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 신해조는 "세조가 금성대군을 시사하자 노산군(단종)이 이 소식을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어 예법을 갖추어 장사 지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반면 육신록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게 된 단종이)'내 위에 더높은 사람은 없다'고 호령하자 한공생이 활시위로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적고 있다.

홍기원씨는 고서 육신록을 공개하는 동시에 같은 제목의 단행본(민속원 발행)도 펴냈다. 원문 육신록을 교열·역주하고,짝수면에는 고문 원문을,홀수면에는 현대어문을 실어 알기 쉽게 정리한 이 책은 역시 처음으로 공개하는 '단종출손기'와 '참판 박공일기'등을 부록으로 함께 실었다.

홍씨는 "육신록을 한중록 등에 이은 제 4대 궁중문학 작품으로 상재하고 싶어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철훈 기자

■'육신록'에 나타난 사육신 죽음의 순간

‘육신록’은 사육신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팽년(朴彭年ㆍ형조참판)

세조가 노하여 “내게 벼슬 받을 때는 신하라고 하고 이제는 (임금을)‘나으리’라 하니 아니 죽을 수 있겠느냐”고 하자 팽년이 소리 높여 “내 품은 뜻이 있어 벼슬을 받았으나 한번도 신(臣)자를 쓰지 않았으니 감사일 때 올린 보고서를 한번 보라”고 했다. 보고서를 가져다 보니 신하 신자가 아니라 클 거(巨)자라. 세조 대노하여 화형을 명하니 불에 달군 쇠를 몸에 지져 누린내가 십리에 퍼졌다.

▼성삼문(成三問ㆍ승지)

세조가 “내 벼슬을 받으며 녹을 먹고 죽지 아니하였다가 이제 배반함은 어째서냐”고 꾸짖었다.

삼문이 아뢰되 “죽지 아니하고 더러운 벼슬을 받음은 임금자리를 회복하기 위함이요, 녹을 받았으나 털끝 하나도 먹지 않았노라”고 했다.

(성삼문이)죽은 후 집을 살펴보니 (세조가 즉위한) 을 해년 이후 받은 녹봉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쌓아 두었더라.

▼유응부(兪應孚ㆍ중추원동지사)

세조가 칼로(유응부의) 살을 깎게 하니 온 몸이 남은 곳이 없고 선혈이 낭자하더라.

세조 화형을 분부하자 쇠를 달궈 지지니 두 다리와 배 아래서 불이 났다.

(유응부는) 안색을 바꾸지 않고 쇠가 차가워지면 “쇠를 다시 덥혀 오라”고 일렀다.

▼하위지(河緯地ㆍ예조참판)

(하위지는) 서울로 올라와 벼슬을 받았으나 녹봉을 받은 족족 아모년 녹봉이라고 기록하고 티끌 하나 먹지 않았다.

참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충성이 한결같더라.

▼이개(李塏ㆍ직제학)

(이개는) 막내 아들이 낳은 손자를 몹시 사랑했는데 세조가 명하여 그 아이를 잡아들여 돌에 부딪쳐서 죽이니 차마 보지 못하더라.

▼유성원(柳誠源ㆍ사예)

성삼문이 잡혀 들어가자 즉시 관복으로 갈아입고 향을 피워 조상께 고하고 목을 찔러 죽었다.

부인이 이를 보고 혼절하자 금부나장이 들어와 시체를 가져다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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