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짜리는 되겠수”영화 ‘달마야 놀자’의 시사회에서 만난 조계사의 한 스님은 배우 정진영(36)의 연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반가운 소리였다.
영화 촬영두 달간 꼬박 김해 은하사에서 반승려 노릇을 하며 반야심경, 예불문, 천수경의 구절들을 한 1,000번씩은 외웠던 것이 영 헛되지 않았음이야.
사실 ‘달마야 놀자’에서‘승려팀’은 좀 약체였다.
스타가 많은 ‘조폭팀’과 달리, 정진영 이문식 이원종 류승수로는. 노스님 역의 김인문의 넉넉한 연기야 수준급이지만, 조폭팀과 ‘맞장’을 떠야 하는 승려팀은 좀 작아 보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몇몇 ‘스파링’ 상대로 보이더니, 점점 호적수가 되간다.
좌장 노릇을 한 정진영의 공이 컸다. “승려라는데 선입견을 갖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래서 조폭팀과 게임에서 자꾸 패배하자 승려끼리 티격태격 하는 모습도 넣고, 농담도 좀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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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마야 놀자
“공부가 부족해 아직 참을성이 부족하다”며 재규(박신양)를 반협박하던 청명은 “세상 더럽히지 말고 여기서 살라”며 그를 잡는다.
“밑 빠진 이들을 가슴에 던지는”노스님의 경지에 한발 가까이 간 청명이 보인다.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누구나 갖는 선입견을 가졌다. 또 조폭이냐? 이번에는 절까지 끌어들였네, 가벼운 얘기를 하는데 괜히 진지한 척 하기는. 그러자 제작자(이준익씨네월드 대표)가 말했다. 당신이 잘못 읽었다. ‘이건 진지한 얘기를 가볍게 하는 것이다’라고. 다시 읽으니 시나리오가 새롭게 보였다.”
‘교도소 월드컵’에 이어 ‘킬러들의 수다’ 그리고 ‘달마야 놀자’까지. 연이은 코미디 영화다. “말이 좋아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것이지 사실 이전 영화의 이미지(‘약속’에서의 연기)를 반복하는 듯한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 좀 풀어지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이전 코미디 영화에서도 나는 너무 딱딱했다. 이번에 가장 많이 풀어진 것 같다.”
서울대 국문과 출신으로 ‘초록 물고기’에서 한석규의 형 역할로 영화에 데뷔했을 때는 연출부를 겸할 때였고,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약속’부터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인지라 딱 3년 만에 얻은 ‘믿음직한 조연’ ‘큰 일 할 기대주’라는 표현이 “신기하기만” 하다.
규격화되지 않은, 일상에 젖은 연기만은 꼭 해보고 싶다.
인터뷰 중 그는 “연극은 마음의 고향. 꼭 돌아가겠다” “영화 연출에도 도전할것”식의 상투적인 말을 쓰지 말아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자기가 아직 하지 않은 약속이 공표되는 것을 몹시 꺼리는 고지식한 성격이다.
“스님, 저들이 있으면 공부에 방해가 됩니다”라는 대사를 위해 3박4일간이나 녹음을 반복한 고집이 이해가 된다.
물론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달마야 놀자
또 조폭 영화야? ‘산사로 간 조폭’이라는 설정만으로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달마야 놀자’(감독 박철관)는 결코 조직폭력배 영화가 아니다. 차라리 승려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대가 자신들의 안마당인 절이라서, 그곳에 숨어든 조폭과 승려들의 에피소드를 다뤄서도 아니다. ‘달마야 놀자’에는 깊지는 않지만, 분명 불교적 삶의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바꾼다.
동료의 배신으로 작은 산사로 쫓긴 어설픈 5명의 조폭과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해탈과 중생 구원을 위해 살려는 스님들의 대결이란 상황만으로도 재미있다.
‘주지’를‘오야붕’ ‘영감님’으로 부르는 언어의 차이에서부터 산사의 생활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온갖 해프닝까지.
뒷골목과 조용한 산사의 거리만큼이나 극과 극의 인생들이 만났으니 오죽하랴. 둘다 주먹깨나 쓰는 조폭의 중간 보스 재규(박신양)와 상좌승인 청명(정진영), 알고 보니 해병대 선후배인 불곰(박상면)과 대봉(이문식), 힘을 자랑하는 날치(강성진)와 힘을 버린 현각(이원종), 말 많은 왕구라(김수로)와 묵언 수행 중인 명천(류승수)의 절묘한 대칭과 개성 충돌, 상식을 뒤엎는 상황 전개로 절간은 웃음이 그칠 날이 없다.
신세대 록밴드가 절에 간 일본 영화 ‘팬시 댄스’(감독 수오 마사유키)도 그랬다.
그 시트콤 같은 웃음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시나브로 스며드는 불교적 가르침과 그로 인해 변해가는 그들의 아름다운모습 때문이다.
“부처의 귀가 떨어졌으면 붙이면 되지” “나도 모르는 문제를 풀어놓고 뭘 물어봐” “자기 수행 열심히 한다고 성불하는 건 아니다” 라고 무심하게 던지는 노스님의 말과 너그러운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은 조폭은 더 이상 조폭이 아니다.
삶에 있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자는 어리석은 중생이 아니다. 그들 가슴 속에 이미 부처가 들어왔다.
짧은 여름날, 어느 산사에서 벌어진 온갖 소동을 초반 한두 번의 과장을 빼고는짜임새 있고 유쾌하게 엮어가면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잃지 않은 ‘달마야 놀자’는 그래서 조폭 영화가 아니다. 그들이 밑바닥 인생인 ‘조폭’이기에 오히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지도 모른다. 9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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