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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朴殷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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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朴殷植

입력
200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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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1일 일제 강점기의 역사학과 독립운동을 이끌던 박은식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병사했다. 향년 66세.박은식은 황해도 황주 출신이다. 태어난 때가 철종 10년(1859년)이었으므로, 그의 성장기 교양은 한학으로 채워졌다. 향시에 합격해서 소소한 벼슬살이를 했지만, 그의 사회 활동은 1890년대에 서울에 거주하고부터 본격화했다. 국운이 기울어가던 그 시기에 박은식은 지사적 언론인으로서 공적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장지연 신채호 같은 동료들과 함께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논설란을 꾸리는 한편 독립협회 활동에도 열성을 보이며 민중계몽 운동에 나섰다.

1910년의 국치 이후에 박은식은 만주로, 상하이로, 시베리아로 몸을 옮기며 독립운동에 온 힘을 쏟았다. 그는 상하이에서 신규식 등의 동지들과 함께 동제사(同濟社)ㆍ신한청년당 같은 독립운동 단체들을 만들었고, 3ㆍ1 운동 뒤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었다.

임정의 내분으로 대통령 이승만이 면직된 1925년에 박은식은 제2대 대통령이 됐지만, 그 뒤에도 내분이 가라앉지 않자 대통령제를 국무위원제로 고치고 그 자신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그가 ‘독립 운동을 위한 전민족의 대동단결’을 유언으로 남기고 작고한 것은 그 얼마 뒤다.

민족사 연구는 박은식에게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이었다. 그가 ‘동명성왕 실기’ ‘발해태조 건국지’ 같은 저서에서 내보인 고대사에 대한 관심은 한국사의 빛나는 과거를 회고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대표적 저술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ㆍ1 운동을 맞고 감격에 차 집필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1880년대부터 1920년까지의 독립운동을 기술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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