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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세이 유라시아 천년] "연재를 마치고…"필자4인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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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세이 유라시아 천년] "연재를 마치고…"필자4인 좌담회

입력
200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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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러시아등 유라시아 관점서 세계사조명"지난해 9월부터 인기리에 연재된 ‘역사에세이 _ 유라시아 천년’이 지난 주(10월 24일자)로 40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800여년전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했던 몽골대제국의 융성기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동양사학자와 서양사학자가 함께 현장을 방문한 뒤 그 의미를 짚어본 이 기획은 문명과 역사, 대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해 여러가지 묵직한 의문들을 독자에게 던져주었다.

참여했던 사학자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연재물이 남긴 성과를 다시 더듬어보았다.

■박한제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진 행 서화숙 여론독자부장

-40회동안 귀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한제 = 대중적이지 않은 이런 기획물을 1년여 동안 연재한 한국일보사에 오히려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국내는 물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도 독자들의 전화를 받으면서 한국일보가 전세계에서 읽힌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전공(중국고대사)과는 거리가 먼 몽골대제국 시기를 쓴다는 것이 학자로서 온당한가 고민하며 시작했는데 글이 나갈 때마다 독자들이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전화해오는 것을 들으며 사학자로서 일반인들의 교양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보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호동 = 저는 연재기간 대부분을 안식년을 맞아 미국 하버드대에서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동창들도 제 글을 읽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그동안에도 사실 실크로드나 우리 민족의 뿌리로서 몽골을 다룬신문 기획이 있었습니다만 대부분 유행을 좇거나 우리나라 역사에 견강부회식으로 갖다붙이는 측면이 많았지요.

반면 이번 기획은 유라시아의 총체적인모습을 문명사적으로 보여주자는 의도여서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정숙 = 더 욕심을 내본다면 한국사학자까지 함께 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더군요.

▲최갑수= 그동안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하면 우리 중심으로만 보거나 중국 중심, 아니면 유럽중심이었지요.

그런점에서 이번 기획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나 몽골, 러시아 등 다각도로 세계사의 흐름을 봤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깊은 일입니다.

▲김호동 = 그래서 전문성을 넘어서는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려고 애를썼습니다.

가령 실크로드를 보통 길로서, 즉 선으로서만 거론하는데 지역, 곧 면의 개념으로 보자고 했지요. 실크로드를 선으로만 보면 목적지만 중요하고 길은 지나쳐가는 수단일 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이동할 때면 실크로드 주변 사람들의 취향이나 해석이 가미돼 출발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종착지에 도착했습니다.

인도의 간다라미술만 해도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도착했을 때는 원래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최갑수 = 몽골대제국 시기만 해도 후진국이던 유럽이 그 후 근대국가로 치솟아 올라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부분의 제국이 외형적 성장을 추구한 나머지 구성원 개인에 대해서는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반해 유럽은 개개인에게 일일이 세금을 부과할 정도로 구성원 하나하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을 묶는 강한 동질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근대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도 서양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유럽의 이런 모습을 일반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렇지 못한 모습을 특수한 경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행에서 저는 유럽의 역사야말로 특수하고 예외적이며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역사가 오히려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정숙= 러시아는 몽골대제국의 지배를 받은 시기가 서구문명과는 대비되는 독자성을 찾은 시기입니다.

강대한 러시아 제국을 이룩하자는 각성이 일어난 것 자체가 몽골대제국의 영향이지요.

그러나 정복시기에 워낙 파괴와 약탈이 심하다 보니 러시아인들은 지금도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고 수긍하길 꺼립니다.

▲박한제 =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면서 제 전공인 중국 고대사도 새롭게 보이더군요.

21세기 한국에 사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환경과 도시계획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볼텐데 원의 수도였던 상도(上都)와 대도(大都ㆍ지금의 베이징)를 다루면서, 몽골이 두 도시를 따로 떨어진 별개의 수도로서가 아니라 중간지대까지 포함한 거대한 수도권의 개념으로 본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 이 기획연재는 올해가 유네스코가 정한 ‘문명간 만남의 해’라는 점에서 문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짚어본 데도 큰 의미가 있었지요.

또한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맞물려 문명권의 충돌이 화두가 되었는데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최갑수 = 이번 전쟁에 문명갈등론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로는 자본주의의 작동방식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요.

이라크의 후세인은 미국이 이란에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서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키운 세력입니다. 미국이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 하면서 걸프전이 터진 것이지요. 탈레반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의 악(惡)이었던 소련이 사라지자 이슬람문명권으로 적을 대체한 것입니다.

▲김호동 =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 성(聖)과 속(俗)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종교문제가 정치문제가 되고, 정치문제가 종교문제가 됩니다. 그 때문에 이슬람권 안에서 독재정권이 이 같은 특성을 정권연장에 활용하는 측면도 있고 미국도 다른 나라들과의 연대를 위해 활용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십자군전쟁때도 가톨릭이 오히려 이슬람과 연합하여 비잔틴을 공격하는등 양상이 간단치않았습니다. 결국은 경제권을 잡기 위한 다툼이지 문명충돌은 아닙니다.

▲한정숙 = 현실에 대한 규정이 미래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문명충돌론은 굉장히 위험한 사고입니다. 일반인들의 증오를 증폭시켜서 정권이 내리는 결정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슬람권에도 친미세력은 있습니다.

문명 충돌을 강조하다보면 문명 충돌을 부추기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그렇다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박한제 =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는 중국이 이슬람문화권과 연결돼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슬람을 탄압하는 나라거든요.

▲최갑수 = 헌팅턴 자신이 유대인 학자입니다. 흔히들 과거가 있어서 역사를 연구하는 것으로 보지만 실은 현재가 역사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홀로코스트만 해도, 당시 유대인 못지 않게 집시도많이 죽었지만 이 부분은 제대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대체로 홀로코스트 관련 사료는 1960년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지로 장악하려 하면서 중동과갈등이 일어나자 집중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유대인은 희생자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갈등관계에 있는 이슬람권도 나쁜 사람으로 연상토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지요.

- 지금은 미국이 몽골대제국 못지않은 수퍼파워인데요, 과연 제국은 언제 융성하고 언제 쇠락하는 것입니까.

▲김호동 = 제국에 속한 사람들의 일치감이 사라질 때 제국은 붕괴되어 갑니다.

몽골제국도 처음 형성될 때는 정복을 위해 살육과 파괴를 일삼았지만 일단 제국이 구성된 후에는 상이한 문화를 다 인정하고 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경직되면서 제국의 황혼은 순식간에 옵니다. 미국의 성장비결은 바로 여러 민족과 문화가 공존한 데 있습니다.

그 유연성과 포용력을 잃으면 쇠퇴합니다. 지금 미국은 그 점을 주의할 때입니다.

▲박한제 = 중국 역시 당나라가 문화적 다원주의를 인정할 때는 융성했지요.

물론 이것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던데다 상대 문화에 대한 훈련이 충분히 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한정숙 = 제국이 형성될 때 포섭세력이 황제의 신민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순응한다면 제국이 유지되고, 반발을 하면 억압책을 써야 하므로 그 자체가 제국을 약화시킵니다.

19세기말 러시아가 유럽열강과 경쟁을 하기위해 근대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근대화정책을 도입하자 포섭세력은 민족주의성향을 강화시키고 반발하게 됩니다.

제국은 또 반발을 억누르는 비용과 분리시키는 비용을 따져서 결국 제국의 해체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됩니다.

▲최갑수= 유럽은 기독교라는 공통된 정신을 제국의 축으로 삼았다면 동시에 국가마다 개별적인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근대 이후 역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을 따라 하면서 최근 40년간 급성장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 역사 속의 대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배울 것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정리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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