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6차 장관급회담을 금강산에서 개최하자는 북측 제의를 수용키로 한 것은 장소 공방으로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트기 위한 고육지책이다.정부는 ‘북한에 또다시 끌려 다닌다’는 여론의 비난 속에 성과마저 불투명한 회담에 나서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수용 배경 정부가 북측의 ‘금강산’ 고집을 받아들인 것은 어떻게든 대화는 계속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했다.
북측이 미국의 아프간 공습 후 남측의 비상경계 태세를 이유로 이산가족 행사 등 모든 합의 사항을 비틀고 있는 만큼,직접 만나 진의를 파악하고 그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테러 보복전으로 이전보다 악화한 북미관계와 불안한 국제정세가 한반도에 미칠 악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
여기에다 내년에는 양대 선거와 월드컵이 예정돼 있어, 연말까지는 경의선 연결 등 굵직굵직한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정부의 발길을 재촉했다.
정부 당국자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핵심”이라면서 “장소 싸움으로 허송세월 하느니 직접 만나 ‘당신들 왜 그러느냐’고 따지는 게 낫지 않느냐”고 설명하고 있다.
수용 과정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변명에도 불구, 금강산 회담을 수용하기까지의 정책결정 과정은 석연치 않다.
정부는 북측과 10차례나 전통문을 주고받으면서 일관되게 ‘평양 개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29일에도“당분간 북측의 태도를 지켜보겠다”고 밝혔으나 채 하루도 안돼 입장을 번복했다. 홍순영(洪淳瑛) 통일부 장관도 “평양에서 하는 게 순리”라고 누차 밝혀 왔다.
때문에 정부의 대북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을 견지하기보다는 ‘정치논리’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특히 재ㆍ보궐 선거 전에는 보수여론을 의식, 평양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선거 후 돌변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수용한 금강산의 유일한 회담장인 ‘금강산 여관’은 전기ㆍ통신 시설이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아 당국간 회담을 갖기엔 부적합한 곳이다.
회담 전망 정부의 더 큰 고민은 회담을 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지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북측은 ‘안전성’ 문제를 핑계 댔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다.
북측이 이번 장관급회담에서도 ‘남조선이 불안하다’면서 서울 개최가 예정돼 있는 경협추진위 등을 금강산에서 열자고 고집할 가능성도 있다.마찬가지 이유로 북측이 연기했던 4차 이산가족 교환 일정도 잡지 못할 수 있다.
북측은 관광객 감소와 현대아산의 유동성 위기로 관광대가 지불이 크게 줄어 외화벌이 사업에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따라서 북측은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으로부터 중단 위기에 몰린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경제적 보증’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대북지원에 관한 한, 거대 야당이 자리잡은 현 정국에서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더 좁아진 상황이다.
정부가 북한에 정부보유미 등 식량 40만톤을 주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올 경우,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오히려더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성급하게 회담 개최에 매달리기 보다는 남북이 냉각기를 갖고 서로의 입장을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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