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두산 선수단이 묵고 있는 리츠칼튼 호텔 1층로비에 있는 식당에 기자가 도착한 때는 29일 오전 10시였다.김인식 두산감독은 이미 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제 술을 꽤 하신 것 같네요”라는 질문에 “오랜만에 좀 마셨습니다”며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두주불사형인 그도 최근에는 건강을 고려, 술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폭탄주를 꽤 마신 탓에 아직도 얼굴이 벌갰다.
해장국을 주문한 뒤 “올해는 삼성-두산의 한국시리즈가 아닌 김응용 감독과 김인식 감독의 한국시리즈였다”고 하자 “선수들이 잘해서 우승한 것이지 내가 한 게 뭐 있습니까”라며 겸손해 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두산 우승의 원동력중 하나로 김인식 감독의 힘을 꼽는다.
프로야구 담당기자들에게 제일 인기있는 감독중 한명인 그는 무척 다정다감하다. 경기전 덕아웃이나 감독실을 찾으면 알건 모르건 간에 꼭 음료수를 권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한화와 올 준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렸던 지난 7일 잠실구장 감독실. 기자가 막 들어섰을 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일전을 앞둔 한화의 관계자였다. 거리낌 없이 적군의 인사와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가 왜 야구계에서 친화력있는 지도자로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야구관은 조금 독특하다. ‘팬들에게 비난받는 스타는 생명이 길지 못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 이기는 야구도 중요하지만 팬없는 프로스포츠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감독이라면 야구는 이런 것이다고 말할 법 한데 그런 얘기는 일절 없다.
지난해 팀의 톱타자 정수근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의 일이다. 정수근의 훈련장면을 유심히 지켜보던 김 감독은그가 덕아웃으로 들어오자 대뜸 그를 불렀다. “수근아 요새 딴데 정신 팔려 있는 것 아냐. 감독실에 가면 누가 보내준 보약이 있으니까 갖다 먹어라”하고 말했다.
보약 덕분이었는지 이후 정수근은 펄펄 날았고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 현대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전을 연출했다. 김 감독은 신세대 선수들이 톡톡 튀는 것은 좋은데 너무 나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정수근이 그런 경우여서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던 것이다.
“요즘 선수들은 우리 때와는 달라요.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랬는데 우리 선수들이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액션을 취할 때는 삼성측에 미안한 감도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야구선수 이전에 인간적으로 성숙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고 강조했다.
한창 혈기왕성한 선수시절에 방종하거나 스타의식에 젖다보면 은퇴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매사에 기본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선수들에게 수없이 반복한다.
그는 1961년 배문중 3학년 때 연식야구 올해의 선수로 뽑혔고 배문고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 입단한 뒤 잘 나가는 투수였다. 어깨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감한 그는 지도자로서 첫 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모교인 배문고와 상문고 감독을 지냈지만 쓰라림만 맛봤다.
얘기도중 핸드폰이 울리자 그의 얼굴에 금새 화색이 핀다. 지인한테 축하전화를 받으면서 “손자가 생겼는데 이제는 할아버지가 됐네”라며 웃음꽃을 피웠다.
가족얘기를 묻자 별로 할말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1년중 3개월을 제외하곤 항상 바깥에서 생활하는 탓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 86년 해태수석코치로 프로에 입문한 뒤 지금까지 가족여행이라곤 한번밖에 간 기억이 없단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승부사라고 말한다. 수더분한 외모와는 달리 속은 강하기 그지 없다. 95년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3차전에서 2-1로 박빙의 리드를 하던 상황에서 위기를 맞았다.
주자가 1사 1, 3루. 볼카운트는 2-2. 누가 봐도 승부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그는 배짱있게 피치아웃을 지시해 상대의 기를 꺾었고 결국 정상에 올랐다. 당시 이 일을 두고 한 야구인은 ‘끼’가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은 최강 팀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졌지만 내년에도 역시 최강 팀일 것입니다”라며 상대방을 추켜세웠다. 점심약속을 위해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은 이제 한국최고의 명장으로 올라선 당당함 그 자체였다.
■김인식감독 경력
생년월일:1947년5월1일 서울생
출신교:배문중-배문고
경력:한일은행선수
해태코치 쌍방울ㆍ두산감독
95년 올해의 감독상수상
2000시드니올림픽 대표팀 코치(동메달획득)
냉정함과 따뜻함을 겸비한 김인식 두산감독.9전9승의 신화를 자랑하던 김응용 삼성감독을 꺾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라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글 정연석기자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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