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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즉결심판 - 즉심전담 법관이 본 요지경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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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즉결심판 - 즉심전담 법관이 본 요지경세상

입력
2001.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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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내 2명의 즉심전담 법관 중 한명인 형사합의 30부 윤성식(尹誠植ㆍ33) 판사. 4년여 전 첫 부임지인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한달에 1~2차례 즉심을 맡았고, 지난해 8월 본원으로 옮긴 이후에는이틀에 한번 꼴로 ‘즉심 인생’들을 만나고있다. 하루평균 15~20건씩, 지금까지 선고한 즉심 판결만도 3,000건이 넘는다.윤 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즉심 유형이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해까지만 하더라도 노상방뇨 및 무임승차 등 경범죄 위반, 무면허 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 가벼운 폭행 등 형법 위반, 예비군 훈련을 받지않은 향토예비군설치법위반 등이 주류였지만 올들어서는 어려운 경제현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생계형’과 ‘규범불감증’ 즉심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생계형 즉심이 포장마차와 전단지 무단 배포. “즉심때마다 포장마차 주인들이 기다립니다. 같은 죄로 3차례나 법정에 선 사람들도 있어요. 젊은이들이 윤락을 알선하는 스포츠마사지 전단 등을 돌리다 적발돼 즉심을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윤 판사는 특히 올들어 부쩍 늘어난 20대와 30대 청년층과 부녀자들의 즉심증가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남대문 등 시장 주변을 중심으로 포장마차를 하는 20대와 30대들이 자주 즉심에 나타납니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즉심에 회부된 한 30대 초반의 포장마차 여주인에게 벌금10만원을 선고하고 적법절차를 밟은 뒤 포장마차를 운영하라고 했더니 ‘실직한 남편이 가출해 생계가 막막하다’며 대성통곡 하더군요. 술 자리에서의 경미한 폭행사건도 계속 늘고 있어요. 역시 극심한 취업난과 실업 여파로 보여집니다.”

벌금액수 등 양형은 개개인의 ‘사정’을 들어본 뒤 ‘재력’을 감안해 결정한다. 통상 20만원 이하가 대부분인 벌금형이 가장 많고, 구류가 뒤를 이으며 선고유예 판결도 간혹 있다.

즉심 판결을 내리기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신호위반 등 교통위반 처분에 대한 이의사건. 판결에 앞서 피의자 진술서와 경찰 단속 경위서 등 2가지 자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릴 경우 난감하다.

“진술이 정반대이고 증거마저 없으면 누구의 진술이 합리적인가를 판단의 우선 순위에 둡니다. 판결에 필요한 자료들이 좀더 충실해지도록 관련 법을 손질할 때가 됐어요.”

그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 즉심판결을 물었다. 선뜻 올해 8월 ‘대검앞 270일 농성 노부부 사건’을 꼽았다. “한국전에참전했다 부상한 선친의 명예회복 및 손해배상을 주장하며 대검청사 앞에서 농성하다 즉심에 넘겨진 P(60)씨 부부를‘이례적으로’ 1시간여동안 심리했어요.

‘검찰총장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니 다른 방법을 찾는게 낫겠다’고 농성중단을 권유했지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아 P씨에게 구류 20일, 부인에게는 구류 10일을 각각 선고했었습니다.”

“심리를 할 수록 각박해지는 세태가 느껴집니다. 공중도덕 등 규범 의식이 사라지고 남을 배려하지도 않고… 어쨌든 즉심 사건들 자체가 고단한 삶의 반영이지요.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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