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의 지강헌 사건, 섹스 비디오의 백지영 사건이 소설가 이병천(45ㆍ사진)씨의 두번째 단편소설집 ‘홀리데이’(문학동네발행)에 등장한다.세상사는 제쳐둔 채 작가의 내면으로만 침잠하는듯 하던 최근 우리 소설 경향에서 이씨의 이번 작품집은 이러한 ‘사건들’을 직접적 소재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표제작 ‘홀리데이’는 팝그룹 비지스의 동명의 노래를 제목으로 삼았다.
홀리데이는 13년 전 88올림픽이 끝난 2주일 후 일요일에 일어났던 탈주범 인질사건에서 지강헌이 죽기 직전 틀어달라고 했던 그 노래다.
이씨의 소설에는 인질극의 실제와 작가가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가 교직돼 있다.
화자는 경찰관. 그는 우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지강헌이 인질로 잡고 있던 스물두 살의 여인과 사건 후 결혼했다.
그가 현재 시점에서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줄거리다. 화자의 지금의 아내는 그런데 도벽(盜癖)이 생겼다. 그녀의 도벽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작품집에 수록된 또다른 단편 ‘백조들, 노래하며 죽다’는 최근의 이른바 섹스 비디오 사건을 다룬다.
정상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섹스 비디오 파문으로 추락하는 한 여가수의 이야기를 이 가수의 전 매니저의 시각에서 풀어본다.
‘백조의 노래’라는 관용구가 있다. 백조는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제 몸의 깃털을 단정하게 고르고는 어디 한적한 곳을 찾아가 목을 가다듬어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여가수의 한 히트곡을 백조의 노래에 비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씨는 최근의 사이버섹스 등 다기한 현실적 소재를 다룬 작품 11편을 이번 작품집에 묶었다.
모두가 우리 주변의 이런저런 잡사에서 캐낸 이야기들이다. 소설가는 이런 잡사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체주의자’라 할 정도로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던 이씨가 10년만에 낸 이번 소설집은 그래서 더 주목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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