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결심판 제도는 1910년 한일 합방과 동시에 시행된 ‘범죄 즉결례’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는 일제가 1885년부터 자국에 도입한 ‘위경죄(違輕罪) 즉결례’를 원용한 것이지만 적용 대상과 처벌 수준은 훨씬 강력했다.일반 형사사건까지 대상으로 해 징역형도 선고할 수 있었고, 심지어 경찰서장이 구형과 선고를 할 수 있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식민지 탄압의 효과적인 도구였던 셈.
1945년 해방과 함께 미 군정이 폐지했던 즉심 제도가 현재와 같은 골격을 갖춘것은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이 제정된 57년. 이후 5차례의 부분 개정을 거쳐지금은 29개 경범죄 항목에 저촉되거나 교통법규 등 기초질서를 위반해 범칙금 스티커를 받고도 기한내 납부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를 부과한다는 게 그 골자가 돼 있다.
즉심 건수는 최근 두드러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97년 112만 6,050건이던 것이 98년 108만7,291건, 99년 90만7,422건, 지난해 69만4,093건으로 크게 줄었다. 유명했던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즉심재판소가 지난해 5월 30년 만에 문을 닫은 것도 이 때문.
형사정책연구원 조병인(趙炳仁) 형사사법연구실장은 “전과자 양산을 막기 위해 즉심 회부를 가급적 피하고 훈방이나 행정처분으로 끝내고 있는 게 추세”라고 분석했다.
더구나 내년 7월부터는 즉심회부자의 90%를 차지하는 범칙금 미납자가 50%의 가산금을 내면 즉심을 면할 수 있게 돼 즉심회부자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검찰은 즉심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대만을 제외하고는 경찰에 재판청구권을 부여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 이유. 올해 초 검찰제도개혁위원회는 대신 즉심 대상자에게 과태료 처분을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경찰로부터 벌과금 납부를 통고받고 벌과금을 내면 형사입건하지 않고 사건처리를 마무리하되, 벌과금을 내지 않으면 형사입건 등으로 강력 처벌한다는 것.
그러나 수사권 독립을 꾸준히 추진중인 경찰로선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유일한 예외인 즉심제도를 없애는 데 반대하고 있다.
대신 운영의 묘를 살리겠다는 입장. 경찰은 “현재도 즉결심판을 청구하기전에 즉심 대상자에 대해 예비심사를 해 깊이 반성하고 주거ㆍ신분이 확실한 경우에는 훈방처리해 국민 불편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다만 즉심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사전에 시민단체, 법원, 검찰, 경찰 등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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