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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양이와 나비를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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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양이와 나비를 살려주세요"

입력
2001.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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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동이란 이런 것일까?우리 신문에서 영화를 담당하는 이대현 기자는 이 영화 시사회에 다녀와서 '고급스런 분위기의 카페의 양주보다 텅 빈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 지난 유행가 한 자락을 읊조리며 자기 연민에 싸여 소주 한 잔을 비우고 싶은 영화'라고 평을 썼다.

임순례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를 지난 일요일에 보았다.

아내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시종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기분이 이해되네요"라고 말했다.

삼류 밴드의 고단한 삶을 그린 영화다. 마지막 장면인 여수의 퇴락한 나이트클럽. 여주인공이 부르던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와 애절한 기타 리듬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귓가에 쟁쟁했다.

결국 소주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자기연민인가?

개봉 이틀째에 일요일 마지막 회라는 점을 감안해도 관객은 상상 외로 적었다. 서울 도심의 복합상영관임에도 관객은 정확히 35명이었다.

입소문을 기대해 2만 명을 초청했다는 대규모 시사회, 영화 담당 기자와 평론가들의 찬사가 정말 무색했다.

주말 이틀 간 전국 관객은 2만5,000명에 그쳤다 하니 이 영화의 생명도 길지 않을 것 같다.

요즘 '고양이 살리기 운동' 이란 것이 있다.

동물애호단체의 캠페인이 아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란 영화를 봐 주자는 네티즌들의 운동이다.

정재은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13일에 개봉했다. 여상을 졸업한 스무 살의 동창 5명이 사회에 발을 디디며 겪는 고난과 꿈을 담담히 그린 이 영화에 대해 영화 전문가들은 예외 없이 오랜만의 수작이라고 극찬했다.

결과는? 개봉 일주일 만에 간판을 내렸다. 관객은 3만 명.

그래도 '고양이'는 '나비'보다 오래 살았다. 같은 날 개봉했던 '나비'(감독 문승욱)는 겨우 5,000명을 모았다.

개봉 3일 만에 간판을 바꿔 단 극장도 있다. 망각 바이러스를 찾아가는 SF 영화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주연인 김호정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토론토 뱅쿠버 런던 도쿄 영화제가 잇따라 초청했다.

손님이 안 들자 남궁진 문화관광부장관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나비 후원의 밤'을 열기도 했지만 관객은 철저히 외면했다.

올해 한국 영화 관객이 작년의 두 배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9월 말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0%가 늘어났다. 작년 32%였던 외국 영화 대비 시장점유율은 40%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 영화의 전성기다. 하지만 영화 담당 기자들이 요즘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예술성에 별(★)표를 많이 주면 영화가 망한다"는 것이다.

'친구'에서부터 '신라의 달밤''엽기적인 그녀' 그리고 '킬러들의 수다'와 곧 개봉할 '달마야 놀자'까지 조폭과 코미디, 엽기를 적당히 버무린 오락성 짙은 영화는 개봉했다 하면 수백 만이 들고 기록을 갈아치운다.

자기 돈 내고 자기 취향의 영화를 보는 데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또 오락 영화에 대한 비판도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한국 영화 시장은 좀 심하다 싶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향기와 철학이 있는 예술 영화를 만들려 할 것이며, 누가 제작비를 대고, 어떤 극장이 '고양이…'와 '나비' 같은 영화 간판을 올리려 할 것인가.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 영화의 '대박 속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들도 높아지고 있다.

참다 못했는지 영화 '고양이…' 홈페이지에 영화제작자 겸 배우인 명계남씨가 글을 올렸다.

"이제 영화를 어떻게 만드나? 무조건 스타가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려서? 투자자를 아무리 구슬려도 '그런 영화 손님 안 들어'하면 그만인데…"

명씨의 글 제목은 '이제 관객이 나서야 한다'였다.

/한기봉 문화과학부장 kib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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