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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즉결심판 - 구류처분 받은 유치장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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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즉결심판 - 구류처분 받은 유치장 2인

입력
2001.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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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평 공간 한쪽에 칸막이가 처진 간이 화장실과 세면대, 굳게 내려진 쇠창살…. 경찰서 유치장은 어디나 비슷하다.그렇지만 그 안의 사연은 십인십색. 즉심에서 죄질이 과하다 싶어 구류처분을 받은 이들은 형사 피의자ㆍ피고인들이 대부분인 유치인들 중에서는 아주 ‘선량한’ 편이다. 직업 특성상 이 곳에 자주 들어온다는 웨이터와 노숙자를 만나봤다.

"호객행위하다가 적발, 웨이터는 시간이 돈인데…"

“하루벌이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웨이터에게 유치장은 쥐약이라니까요. 시간이 돈인 데 꼼짝없이 갇혀있으니….”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루 남은 ‘출감일’을기다리는 H나이트클럽 웨이터 김창준(27ㆍ가명)씨는 “밀린 집세와 생활비를 어떻게 메꿔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호객행위를 하다 구류 5일의 처분을 받았다. 행인에게 “놀러 오라”며 명함을 돌리다가 잠복 근무중인 형사에 걸린 것.

“길거리에서 행인을 가로막아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거에요. 그렇지만 명함이라도 돌리지 않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데 도리가 없잖아요. 손님 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웨이터에게 명함을돌리지 말라는 건 먹고 살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웨이터 생활 3년째로, 월 수입이 80~90만원에 불과하다는 그는 “벌금형을 받으면 일을 더 해서 그만큼 보충하면 되지만 구류를 받으면 일 못해 수입 끊기고, 업소에선 결근 벌금 명목으로 월급까지공제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류를 살고나온 달은 수입이 평상시의 3분의 2정도라는 것이 그의 푸념.

그는 이번에는 동거 중인 여자친구에게조차 구류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푸른 수의를 입고 있는 저를 보더니 충격을 받아 며칠간 몸져 눕더군요. 제가 큰 죄를 저지른 줄 알았나 봐요. 그래서이번에는 그냥 바닷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고 거짓말 했어요.”

김씨는 “중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옆의 수감자들을 보면서 저러지는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구류생활에서 얻는 유일한 소득”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노숙보다 되레 편해 나가면 어떻게 하나"

같은 날 서울 영등포경찰서 유치장.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남루한 옷차림의 박노식(53ㆍ가명)씨가 피곤에 찌든 눈빛으로 면회실에 들어섰다.

영등포역 구내에서 노숙을 하다가 즉심에서 구류 2일을 선고받고 이날 입감된 그는 웨이터 김씨와 달리 오히려 유치장이 살만하다는 입장.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데 인제 며칠은 걱정없다아이가….”

4살에 부모를 여의고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아직 ‘숫총각’.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향인 부산의 공사장에서 미장일을 도와주면서 근근이 먹고는 살았다.

“IMF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제. 일감도 없고 노임(勞賃)이 박한 부산에선 도저히 못 살겠더라꼬.서울에서 돈 좀 벌어 고향에 내려갈까 했제.“

그러나 낯선 서울살이가 쉬울 리 없었다. 글을 쓸 줄 모르는 터라 은행 계좌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그는 상의에 비밀 호주머니를 만들어 모은 돈을 갖고 다녔다. “언날(어느날) 대합실에서 깜박 졸다 인나봉께(일어나보니) 돈이 감쪽같이 사라진기라. 눈 감으면 코배어가는 세상이라카더만 서울살이가정말 그렇데….”

그러니 노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과 수원의 노숙자 시설을 오가며 끼니를 때웠고 잠자리는 서울역과 영등포역의 대합실 한 귀퉁이에 신문지를 깔고 해결했다.

“경비원들과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쫓아내기는 해도 잡아가지는 않더라꼬. 내사 차라리 유치장에 잡혀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제.”

그는 구류가 끝나고 세상에 나갈 일을 벌써부터 걱정했다. “마, 유치장에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어렵게 살아왔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지 말자는 신조였제. 근데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요즘같은 불경기가 없네. 인제 나가면 우짜꼬.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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