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면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전부를 봤다고 단정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만들어진 환상에 가깝습니다.”28일 오후 서울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2001평화촌 세계작가회담’ 심포지엄에서‘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고’를발표한 독일 작가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57)는 “진실은 먼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날 부흐의 ‘보고’는 최근 국제 정세와 관련,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방문한 세계적 작가의 리포트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부흐는 독일 차세대 문학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작가. 이전에도 캄보디아, 르완다, 수단 등 세계 분쟁지역에서 통신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현장을 지키는 작가’로 유명하다.
‘2001 평화촌 세계작가회담’은 소설가 황석영씨의 주도로 8개국 18명의 유력한 작가들을 초청, 국내 저명문인 50여명과 함께 세계화 시대의 화해와 평화를 논의하며 31일까지 닷새간 계속되는 행사다. 황씨는 평소 절친한 부흐에게 전장 경험을 들려줄 것을 청했다.
부흐는 “파키스탄에 머물던 중 국경을 넘어 아프간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21세기 첫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 아프간에서 직접 만난 이들은 자신이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고 그는 말했다.“그들에게 지하드(성전ㆍ聖戰)에 동참하겠느냐고 물어 봤다.
기꺼운 마음으로 지하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지하드에 동참한다면서도 그들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부흐가 본 ‘진실’이었다.
그는 싸움터에서 여성과 어린아이마저 죽어가는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고 전했다.
분쟁 지역 바깥에서는 어떤 의견이든 쉽게 주장할 수 있지만, 전쟁의현장에서는 이런 저런 의견들이 무의미해진다는 게 그가 얻은 깨달음이다.
이때문에 부흐는 “작가는멀리서 보기만 해선 안 된다. 작가의 시선은 정직한 것이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부흐의 ‘보고’에 이어 벌어진 국내ㆍ외 작가들의 토론 내용도 대부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과 분단 한국의 현실에 초점이 맞춰졌다.
노르웨이 작가 할프단 프라이하우(43)는“미국의 테러 참사와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도대체 인간적인 행위는 무엇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면서 내가 갖고 있던 해석의 틀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충족하지 못한다는의미에서의 ‘빈곤’은 윤리와 정치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며, 테러리즘은 빈곤과 같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포화를 걷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문학을 통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날 행사에 앞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73)와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66)는 “평화촌행사에 마음으로 동참한다”며 메시지를 보내 왔다.
귄터 그라스는 특히 “점점 가까워지려는 남북한의 시도와노력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독일 통일은 너무 급하게 이뤄져 어려움을 야기했던 만큼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행사는 30일 ‘한국의 분단과 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 뒤‘평화 선언’을채택하고 31일 폐막될 예정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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