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어느 뮤지컬 배우가 자신의 수중분만 과정을 인터넷에 띄우면서 관심이 높아지더니 지금까지 거의 3,000명의 우리 아기들이 물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내 주변에도 요사이 수중분만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이렇듯 수중분만에 관한 사람들이 관심이 높아지며 그 의학적가치와 안전성에 대한 찬반 논란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제왕절개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우리사회에 훌륭한 대안분만법으로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측과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일축하는 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반대하는 기존 의학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태아의 감염위험이다.
태아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할 때 종종 산모들이 대변을 멈추지 못하는 수가 있는데, 수중분만의 경우에는 바로 물에 섞여 태아를 감염시킬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중분만을 시행하는 산부인과에서도 자동정화장치를 갖춘 욕조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의사와 간호사들이 산모와 태아에 대한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노력들이 그런 대로 효과가 있는지 아직까지는 감염으로 인한 이렇다할 사고들이 그리 흔하지는 않은 듯 싶다.
아들 녀석이 태어날때 생각이 난다. '물이 터졌다'는 아내의 말에 주치의에게 전화를한 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벌써 몇 달째 배워온 '후후하하' 숨고르기를 아내와 함께 하며 근육의 수축이 빨라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기가 자궁안에서 변을 보기시작했다는데 그대로 두면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괄약근의 수축을 촉진하는 우리 몸의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과 똑같은 효능을 갖도록 만든합성호르몬을 투여한 지불과 여섯 시간 만에 아들은 이 세상사람이 되었다.
수중분만이 안고 있는 감염 위험이 결코 우습게 넘길 일은 아닐 듯 싶다.
하지만 앞으로 서비스를 꾸준히 개선해나가다 보면 감염문제는 충분히 극복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인 내게는 감염위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중분만에는 자주 '자연'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바로 이 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제왕절개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분만을 우리는 흔히 자연분만이라고 하는데 수중분만은 그 자연분만보다도 더 '자연스런' 것 같은 냄새를 풍긴다. 수중분만의 어떤 면이 그렇게 자연스럽다는 것인가.
의사선생님들이 직접 하시는 말씀은 물론 아니겠지만 수중분만을 생각하는 일반인들은 사뭇 진화생물학적인 설명을 덧붙이길 좋아한다.
아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인간도 결국 물에서 나왔다는 얘기 말이다.
생후 몇 개월도 채안 된 아기를 수영장에 집어넣고 엄마의 자궁 속이 마치 우리의 고향인 바다와 같았기 때문에 갓난아기는 본능적으로 수영을 잘한다는 궤변에도 비슷한 진화적설명이 담겨 있다. 인간이 물에서 왔다니 도대체 언제적 얘기인가.
진화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최초의 생명은 물속에서 탄생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물속에서 탄생한 최초의 척추동물인 어류가 뭍으로 올라오며 양서류 또는 파충류가 되었다가 훗날 조류와 포유류가 분화되어 나왔을 것이다.
그 얘기는 우리를 비롯한 모든 포유동물들은 그 누구도 직계조상이 곧바로 물에서 기어올라온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포유류가 되기 이전에 양서류나 파충류 시절에 이미 물을 빠져 나왔다.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물 속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 포유동물들 중 뒤늦게 물로 다시 돌아간 고래들에게도 수중분만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육지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들에게 수중분만은 아직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지 자연회귀의 낭만이 아니다.
물 속에 살아야 하니 아기도 물 속에서 낳지만 엄연히 허파를 가진 동물이다 보니 갓 태어나 아직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어린 것도 물위로 떠올라 숨을 쉬어야 한다.
혼자 힘으로하기 어려워하는 새끼 고래를 산모의 친구들이 떠받치고 물위로 오르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 조상님이 손수 물에서 나오신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래도 물을 퍽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00만년 전 우리 조상과 헤어져서로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걸어온 가장 가까운 우리의 사촌 침팬지는 신기하게도 물을 대단히 싫어한다.
이웃 나라 일본의 긴꼬리원숭이들이 온천을 즐기는 사진은 본적이 있을 지모르나 침팬지가 수영을하는 걸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중분만으로 아기를 낳은 산모들의 대부분이 만족해 한다는데 혹시 그 마음의 평안이 잘못된 진화상식에 의거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이를 낳을 때가 가까워지면 산모 홀로 숲 속의 조용한 곳을 찾는 어느 아프리카 종족은 있어도 강이나 바다를 찾는 풍습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애써 고래들의 어려움을 체험할 까닭이 무엇인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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