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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파가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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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파가니니

입력
2001.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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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10월27일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니콜로 파가니니가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1840년 프랑스의 니스에서 몰(歿).파가니니는 그가 살았던 19세기만이 아니라 그의 생애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음악의 역사에서 파가니니는 명인 또는 대가라고 번역될 비르투오소의 등장을 알렸다. 9살 때의 첫 연주회를 시작으로 그는 일생동안 유럽 전역에서 연주회를 가지며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의 모자, 옷, 장갑을 모방한 의류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로 파가니니 선풍은 대단했다. 말하자면 그의 인기는 오늘날의 힙합 가수들 같았다.

악마적 재능으로 동시대의 동료들을절망시킨 파가니니는 자신의 연주법을 비밀에 부쳐 신비감을 만들어 냈고, 제자도 시보리 한 사람을 두었을 뿐 유파를 만들지 않아 ‘파가니니 주법’은체계화되지 못하고 그의 일대로 그쳤다.

파가니니의 솜씨를 얘기할 때 늘 따라다니는 일화가 있다. 한 연주회에서 그가 연주하던 바이올린의 줄이 한 가닥 끊어졌다.

청중은 당황했지만, 정작 연주자 파가니니는아무런 동요 없이 나머지 세 줄로 계속 연주를 했다. 그 뒤 한 줄이 더 끊어져 나갔고, 다시 한 줄이 끊어져 나가 현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나 파가니니는 그 한 줄만을 가지고 완벽한 연주를 해냈다.

다소 믿기 힘든 이 에피소드는 ‘외줄 바이올린과 파가니니’ 일화라고 불린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그의 명성 때문에 작곡가로서의 파가니니는 별로 거론되지 않지만, 그는 화려한 바이올린 곡들을 만든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 곡들은 모두가 극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파가니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연주하기가 힘들었다. 파가니니는 일생동안 미녀 사냥에 열중한 바람둥이이기도 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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