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관에 통신 감청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미국의 반 테러법안이 인권침해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미 하원은 24일 연방수사국(FBI)와 경찰 등에 테러 용의자의 자택을 비밀리에 수색하고 전화를 도청하며 E-메일을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는 테러퇴치법안을 압도적 표차로 가결했다. 법안은 상원에서도 무난히 통과돼 26일께 조지 W 부시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테러범뿐만 아니라 자금을 제공하거나 피난처를 제공한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또 연방 수사기관이 테러를 이유로 감청영장을 신청할 수 있게 했으며, 이동전화를 비롯해 테러용의자의 모든 전화를 도청할 수 있도록 했다. E-메일 감청도 허용했으며, 가택과 서류 수색 등도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했다. 돈세탁 단속 권한도 부여했다.
테러에 놀란 미 정부와 의회가 초당적으로 마련한 이 법안에 대해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은 “미국인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인권단체와 일부 의원들은 사생활 침해 등 인권 남용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계 등은 이 법안이 테러 혐의가 있는 외국인을 구금, 강제출국시킬 수 있도록 해 수사 기관들이 ‘마녀사냥’식 수사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이슬람, 기독교 단체들은 22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반 테러법안은 연방수사기관에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해 이민자들과 정당한 불만세력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법부의 감시기능을 보장하지않는 한 언론 자유 등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4일에는 9월11일테러 직후 구금돼 이민법 위반으로 강제출국을 기다리던 한 파키스탄인이 구치소에서 사망한 사실이 밝혀져 이런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미 의회는 새로운 감청권한을 영구적으로 부여해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2005년 12월31일까지 시한부로 허용했지만 인권 단체들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남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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