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역사'‘자기 자신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충격인가’.
‘거울’이 필수품이 되어 인류가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게 된 것은 사실 몇 백년도 되지 않는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연구원 사빈 멜쉬오르 보네가 쓴 ‘거울의 역사’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됨으로써 얻게 된 것과 잃은 것을 조망했다.
우물로 자신을 들여다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윤동주의 ‘자화상’이 그렇듯 국내에서 ‘비춰봄’의 이미지는 주로 반성과 자아성찰을 의미한다.
거울을 책상에 붙여놓고 시험을 보게 했을 때 커닝하는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국내 한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거울의 발달사를 추적한 보네는 우물을 보면서 부끄러움이 아닌 ‘허영’을 얻은 나르시스의 시각에서 거울을 들여다 본다.
프랑스 혁명 당시 체포된 한 귀족 부인은 감옥에서의 치장을 위해 거울을 가져다줄 것을 간청했다. 중세 화가들은 거울을 든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을 그리며 거울을 흠 없는 신의 형상을 만날 수 있는 매체로 여겼지만,17세기 이후 대중화 과정을 거치며 거울은 개인이 저마다 가진 ‘허영과 투쟁의 장’이 되어 간 것이다.
작가는 거울로 보는 자신이 ‘주체이며 동시에 객체이고, 심판이고 또한 게임이며,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인’ 혼돈임을 17~19세기 사료와 예술가들의 작품을 근거로 풀어냈다.
물론 이 책이 어떤 대상이든 형이상학적이고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프랑스식 사유로 만채워진 것은 아니다.
16세기 뛰어난 거울 제조법을 자랑했던 베네치아와 그 곳에 산업 스파이를 파견했던 프랑스 왕립거울제조소의 경쟁, 밀밭을 팔아 거울을 샀던 17세기 ‘부와 허영의 상징’ 거울이 20세기 들어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상세한 과정이 책의 전반부를 차지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거울이 바꿔놓은 인간의식의 변화다.
“아름다운 여인은 거울을 보고는 자신이 바로 그 모습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못생긴 여인을 그게 다 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는 시몬느 베이유의 말은 ‘이미지와 반사상이 많을수록, 비밀은 더욱 깊은 곳에 숨을 것’이라는 작가의 맺음말과 상통한다.
작가는 자신을 보게 됨으로써 어느새 보지 못하게 된 것들에 마음을 쏟았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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