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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죽음과 벗하라, 그것이 진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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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죽음과 벗하라, 그것이 진짜 삶이다"

입력
200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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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악(惡)이라는 개념 때문에 선(善)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삶은 죽음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예고된 죽음을 사유(思惟)하면서 살아간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임신한 여인의 태 속에 죽음이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김열규(69)인제대 교수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새 저서에 ‘한국인의 죽음론’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죽음의 의미를 끈기 있게 고찰하는 한편, 고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태도를 파고 들어간다.

일찍이 한국인에게 죽음은 정결하지 못한 것이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남의 집 부고를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 풍습도 있다.

권세와 부(富)를 누리는 집안에서도 초상이 나면 상여꾼으로 백정을 골랐다. 한국인은 애써 죽음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려 했다.

한편으로 죽음을 남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다.

나무가 시드는 것을 ‘나무가 죽는다’고 하고, 소리가 낮아지는 것을 ‘소리가 죽는다’고 한다. 기가 꺾이는 것을 ‘기가 죽는다’고 한다. 정작 ‘사람이 죽다’는 것은 돌려 표현했다.

‘눈감다’ ‘세상을 등지다’ ‘세상을 뜨다’처럼. “삶에 커다란 강조점을 찍어왔지만, 죽음은 홀대받고 주변으로 쫓겨났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에게 수녀들이 찾아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치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호스피스 활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었다.

김 교수는 이런 가설을 설명한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여겨온 것, 한국에서의 죽음은 원령(怨靈)과 맺어지면서 공포가 증폭됐다는 것, 상례에서 제도화한 울음이 죽음의 공포를 부추긴 것, 한국인이 죽음에 대한 종교적ㆍ철학적 통찰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네 삶과 죽음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죽음의 공포를 덜어내고 정을 붙이려면 죽음과 절실하게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이 삶다워지기 위해선 죽음과 벗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삶의 반대쪽이 아니라 안쪽에 놓으면, 삶과 죽음의 가파른 경계는 허물어진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를 한꺼풀 벗기면 ‘삶을 기억하라’는 절박한 외침이 들린다.

죽음을 잊으면 삶마저 잊혀진다. 죽음을 가까이 둘 수있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메멘토 모리’!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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