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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포장마차 메뉴 좀 더 연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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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포장마차 메뉴 좀 더 연구해야

입력
200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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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포장마차 나무의자에 앉아 뜨거운 어묵(오뎅) 국물을 안주로 소주 몇잔 마시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경험이다.출출한 사람, 술 한잔 생각나는 사람, 기분 좋은 사람, 쓸쓸한 사람들이 모두 고객이 된다.

요즘에는 포장마차가 낮에도 음식을 팔고, 메뉴도 신세대 취향으로 바뀌어 그전에는 없던 떡볶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

포장마차는 시민들의 부담 없는 쉼터로 자리잡았지만, 폐단도 많다.

대부분 무허가의 불법 업소이고, 인도를 점용하여 통행을 어렵게 하고, 인근 식당과 술집 등의 영업에 지장을 주고, 조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위생에도 문제가 있다. 자치 단체들은 이런 부작용 때문에 노점상 단속에 나서곤 하지만 생존권을 내세운 노점상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단속이 잘 안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90년 노점 활성화 방안으로 4,000개의 가판대를 지정하고 도로점용료를 받으며 관리하고 있는데, 이중 식품 판매대에서 팔 수 있는 음식 종류를 제한하는 조례가 지난 7월부터 시행됨으로써 포장마차 메뉴의 변화가 일고있다.

판매가 허용되는 식품은 핫도그 햄버거 샌드위치 오징어 김밥 등 5종이고, 어묵 떡볶이 튀김 호떡(붕어빵) 등은 금지됐다.

현장에서 조리하는 식품을 금지하다 보니 포장마차의 정취가 깃든 오랜 인기 메뉴들이 사라지게 됐다.

판매가 허용된 5종은 미리 만들어 두거나 간단히 데우면 되는 것들인데, 김밥을 제외하곤 모두 서양식 패스트푸드다.

메뉴만 훑어봐도 목이 막히는 기분이다. 제대로 된 조리시설 없이 노점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문제점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너무 획일적으로 단속 기준을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식품위생'만을 생각한다면 현장에서 가열하여 만드는 어묵이나 떡볶이 등이 미리 만들어 둔 김밥 샌드위치 등에 비해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급수 배수 시설이 없어 비위생적이고, 주변 오염 등이 문제가 되겠으나 좀 더 검토할 여지가 있다.

서울시는 시범 관리해 온 이들 가판대를 2007년 말까지 모두 없애고 도로를 시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노점 시범관리의 목표가 노점 추방일수는 없다. 서울시는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노점 활성화 방안을 세워야 한다.

서울의 특성을 살린 노점, 서울 시민은 물론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서울의 정취를 맛보게 하는 노점을 오히려 육성해야 한다.

몇 년 전 대만에 취재 갔을 때 도시의 노점을 관찰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자율적인 영업규칙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근 식당들이 영업하는 점심 저녁 시간에는 노점들이 만두나 국수 등의 음식을 팔지 않고, 목 좋은자리는 시간대에 맞춰 과일 음식 간식 토산품 등을 파는 여러 명의 노점상들이 교대로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상도'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노점상들이 좀더 효율적인 영업규칙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점상 메뉴만 해도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허용식품 금지식품을 정할게 아니라 노점상들이 독자적인 의견을 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의 단속방침이 알려진 후 한 노점상 할머니가 "떡볶이와 어묵은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고 정해진 분량을 들고나와 현장에서 끓이기 때문에 탈이 날 위험도 없는데 왜 못 팔게 하느냐"고안타까워 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의견들이 조례를 만들 때 검토되었는지 궁금하다.

노점상 메뉴는 그 도시의 맛을 담고 있다. 관광지마다 그 나라의 독특한 음식들을 노점에서 팔고 있다.

관청의 담당자들 뿐 아니라 노점상 상인들, 시민들, 요리전문가 등이 모여서 우리나라의 노점 메뉴로는 무엇이 적합한지 토론하고 새 식품을 개발해야 한다.

떡볶이나 어묵을 고집하자는 말이 아니다. 서울의 노점에서 핫도그나 샌드위치, 고작 김밥을 파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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