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10월25일 프랑스의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가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1832년 몰(歿).수학은 음악과 함께 재능이 가장 일찍 피어나는 분야다. 갈루아가 다른 분야로 들어섰다면, 그가 21년의 짧은 삶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행스럽게도 수학을 택했고, 그래서 다른 분야의 거장들이 늘그막에야 이룰 만한 것을 16세에서 21세까지 5년 동안 이뤄냈다.
고작 60페이지에 불과한 그의 전집은 수학사의 한 스펙터클이다.
그래도 그의 요절은 아쉽다. 그가 도입한 군(群)이나 대수체(代數體: 이 개념들은 수학 사전을 참조하시라.
여기 옮겨 놓기에는 너무 전문적이다)의 개념들만으로도 갈루아라는 이름은 수학의 역사에서 불멸이 되었지만, 만일 그가 고종명(考終命)했다면 인류는또 한 사람의 가우스를 얻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짧은 삶은 주윗사람들의 몰이해와 관재(官災)로 휘청거렸다.
갈루아는 대수방정식이대수적 해법(4칙 연산과 거듭제곱근 풀이)만으로 풀리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수학자들은 이것을 ‘갈루아 이론’이라고 부른다)을 기술한 사람이지만,진지한 수학사가들마저 그의 이름에서 방정식론보다는 파란의 삶을 먼저 떠올린다.
갈루아는 동시대인들보다 너무 앞서 나갔다. 그는 파리 이공대학교 시험에 두 차례나 떨어져 결국 진학을 포기했다. 운도 없었다.
학사원에 보낸 논문들은 담당자들의 부주의로늘 사무실 서랍에 처박혀 있었다. 7월 혁명을 전후해 분출된 자신의 공화주의적 열정 때문에 그는 또 감옥엘 들락거렸다.
갈루아는 하잘 것 없는여자를 두고 벌어진 피스톨 결투로 죽었는데, 전기 작가들은 이 사건을 경찰이 놓은 덫으로 추측한다. 갈루아 이론은 결투 당일 새벽에 집필되었다.
고종석 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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