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갈등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 이해의 차이였습니다."지난 23일 오후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이임 기자회견장에서 그간 노출됐던 노조와의 불협화음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가까이서 일해왔던 직원들은 상당히 진솔한 얘기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익성만을 좇는 대주주(뉴브리지캐피탈)와 한국적 특성에 길들여진 기존 제일은행 임직원간에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그가 적잖은 심적 고생을 겪었다는 얘기다.
하이닉스반도체 지원을 비롯한 여신정책에서부터 인력 감축 문제, 수익구조 개선 문제 등 사사건건 대주주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측근은 "이사회에서 번번이 질책을 받으며 한국적 경영에 적응하려던 노력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은행장 교체에 대해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외국계 펀드의 생리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많다.
호리에 행장이 머물렀던 1년8개월 동안 가시적인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경질 사유라면 신임 행장 체제의 제일은행은 앞으로 국내 현실은 아랑곳 않고 더 더욱 단기 수익에만 목을 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브리지캐피탈의 단호한 임면(任免)은 부실 경영에 책임을 져야할 경영진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리를 지키고 대주주와 정부, 그리고 국민들은 이를 관용으로 넘겨주는 국내 기업 풍토에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또 "사임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며 대주주와 회사에 대해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킨 호리에 행장의 태도 역시 그렇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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