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할까, 순진무구하다고 해야 할까. 한국화가 유양옥(57)씨와 서양화가 정 일(43)씨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수묵진채화와 유화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있으면서도 동일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난만한 동심의 세계일 수도 있고, 무구한 민화의 세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들의 작품에서는 다른 미니멀리즘이나 추상주의 현대미술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이 없다.

유씨는 31일까지 서울 관훈동학고재(02-739-4937)에서 열리는 2번째 개인전 ‘유양옥 그림판’전에서 수묵진채화 70여 점을 보여준다.

단정하고 미끈한 사군자도 아닌,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산수화도 아닌, 발랄하고 재미있는 현대적 수묵화다.

식물성 염료로 엷게 칠한 담채(淡彩)가 아니라 광물성 염료로 진하게 칠한 진채(眞彩)다.

비뚤비뚤 못생긴 초가, 눈만 달린 금붕어, 발 달린 우산, 심지어 외 뿔달린 상상 속 동물 ‘유니콘’까지 동심의 세계에나 나올법한 소재들이 작품마다 가득하다.

‘매화마을’(세로 84㎝, 가로 65㎝)을 보자. 화면 오른쪽에 초가, 가운데에 매화나무, 왼쪽에 대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기형적으로 벌려진 새의두 다리와 투명하게 처리한 대나무는 전통 수묵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표현. 동양화에서 그렇게나 중시하는 ‘여백’은 아예 물감으로 꽉 채웠다.

작가는 “서양의 유화에 해당하는 우리의 진채화가 광복 후 점점 사라지고 문인화가 오로지 우리의 정통 그림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당나귀 개구리 금붕어 닭 등 어린 시절 우리 생활 속에 공기처럼 녹아 있는 소재들을 이러한 수묵진채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강대 사학과를 중퇴한 뒤 10여 년 동안 인사동에서 미술책방, 필방, 화랑 등을 운영하다 독학으로 수묵화를 배운 특이한 경력의 작가다.

유씨의 작품이 동시를 떠올린다면, 정 일 인천교대 미술교육과 교수의 작품은 기승전결을 온건하게 갖춘 동화에 가깝다.

그것도 1970년대 이후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들을 지배한 서구동화의 세계다. 날개 달린 천사, 첼로 모양의 악기, 코끼리를 먹은 보아 뱀 등 다분히 서양적인 동화의 세계다.

26일~11월8일 서울 신사동 예화랑(02-542-5543)에서 열리는 그의 28번째 개인전에는 이러한 동심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유화 40여 점이 선보인다.

옹달샘 위에 떠 있는 모자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새(‘옹달샘’), 왕관을 쓴 왕자를 향해 날아가는 날개 달린 천사(‘향기’) 등 관람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그림이다.

‘모자처럼 보이는 보아 뱀’ ‘하트를 닮은 뱀’처럼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모티프가 반복해서 출현하는 점이 흥미롭다.

위 : 유양옥씨의 2001년 작 '매화마을' (세로 84cm 가로 65cm) 아래:정 일씨의 2001년 작 '향기' (세로 182cm 가로 227cm)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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