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하고 날렵한 검은 마법사 옷에 실린 강렬한 비트와 애조 띤 선율. 흐느적거리고, 현란하다 못해 요사스럽기까지 한 ‘이정현식 테크노’는 없다.대신 힘있고 절제된 군무가 있다. 동작 하나하나에 폭발적인 에너지가 실려 있다. 23일 KBS ‘열린음악회’ 녹화현장, 무대 밖의 이정현은 한층 더 가늘어진 듯했다. “음반준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살이 더 빠져 지금은 39kg 밖에 안 나가요.”
앨범 자켓에는 컨셉 디렉터, 아트 디렉터, 게다가 뮤직프로듀서까지 모두 ‘이정현’의 이름이 박혀 있다.
3집 제목이 ‘Magic To Go To My Star’. 사람들을 마법으로 이끌어 이정현이라는 ‘별’로 안내한단다.
“ ‘마술’이라는 컨셉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동화나 마술 같은걸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작곡가들과 같이 멜로디를 만들고 비트를 붙였다고 했다.1, 2집에서 음악 프로듀서를 도맡았던 최준영 대신 윤일상 최수정 주영훈 등이 두루 참여했다.
최준영 특유의 강렬한 오리엔탈풍 테크노 대신 ‘점포맘보’ 식의 경쾌한 댄스리듬, 슬프면서 몽환적인 힙합 등이 두루 섞여있다.
“타이틀곡 ‘미쳐’는 그냥 들으면 느린 것 같지만, 사실은 리듬이 빨라 묘미가 있죠. 일상이 오빠(윤일상)한테 비결을 가르쳐 달라는데 안 알려 주네요.”
천편일률적인 자켓 사진이 싫어 자신을 꼭 닮은 특수인형도 만들어냈다. 각도에 따라 그림이 변하는 몽환적인 홀로그램까지 넣었다. 이정현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그는 “소품은 중요하지 않아요. 무대 자체가 강렬하니까요”라고 거듭 말한다. ‘와’ ‘바꿔’ 등 전국적 돌풍을 일으킨 이정현식 테크노.
‘꽃잎’ 소녀의 변신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인지 선녀의상과 손가락 마이크, 커다란 눈동자가 그려진 부채 등 특이한 소품들이 유독 사람들의 뇌리에는 박혀 있다.
그게 싫다고 했다. “라이브 무대에도 꼭 설 거예요. 밤을 새워서라도 연습해야죠.”
그는 옹골찬 각오를 내비치며 ‘볼것만 많은 댄스가수’라는 일각의 편견을 씻어내려 했다. 무대 밖에서 ‘여러분 사랑해요.’ ‘잘 자, 내 꿈 꿔.’ 의 잔상도 뛰어넘고 싶다.
오로지 ‘무대 카리스마’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때로는 상대를 정신 없게 만들던 당돌함과 자유분방함도 말끔히 가신듯하다.
앨범 홍보자료에 밑줄을 치며 맘에 안 드는 구절을 일일이 고치는 이정현.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끄집어내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스로를 디자인하는 열정으로 뭉쳤다.
그에게는 동화속 마법나라를 꿈꾸는 여린 소녀와 철저하고 집요한 ‘기획자’가 공존한다. 그게 이정현의 힘이자 매력이다.
/양은경기자 key@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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