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부가 있었다. 딴데 놀러 갈 때는 붙어 다니지 않는데 골프장에 갈 때만은 부부동반을 했다.남자 혼자 초청되는 경우에는 아예 그 초청을 거절하거나 저쪽의 멤버를 한 명 빼고 부부동반을 고집했다. 부부금슬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짝이 없으면 잠시도 못 견디는 그런 관계도 아니었다.
물론 남자가 먼저 골프를 배웠다. 여자는 사업상 남편이 골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면서 언젠가는 남편의 골프파트너가 되어보겠다는 마음에 남편 몰래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골프채를 잡고 보니 심심찮게 운동도 되는 것 같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나 남편은 눈치채지 못했다. 중고 골프채를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골프연습장에 등록하는 일까지 남편과는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잠자리에서 여자는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어느 날 아내의 손을 잡아본 남편은 놀랐다. “아니 손이 왜 이래?” “손이 어때서요? 집에서 빨래하고 살림하면 이렇게 돼요. 그동안 마누라 손을 얼마나 안잡았으면 그럴까?”여자는 시치미를 뗐으나 남자는 속지 않았다.
“당신 골프 배우지? 얼마 됐어? 나는 못 속여.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근육이 단단해진 것을 보면 꽤 되는 것 같은데?” “혼내려고요?” “내가 왜 혼을 내. 좋은 골프파트너 하나 생기면 좋지. 은퇴해서 골프파트너 없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했는데 잘 됐네. 당신과 라운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이야!”
얼마 후 부부동반으로 골프장에 나간 남편은 아내를 아내로서가 아니라 골프파트너로서 대해주었다. 꼭 지켜야 할 골프규칙과 에티켓, 환영받는 골프파트너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있는 자세와 방법 등을 끈기를 갖고 가르쳐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가르침을 고마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부부는 골프를 함께하면서 어느새 서로가 인정하는 불문율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골프장에서만은 서로가 부부로서가 아니라 골프파트너로서 대하는 것이었다.
경쟁을 할 때나 상대방을 배려할 때나 어떤 상황에서도 부부보다는 골프파트너가 우선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서로의 골프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고 골프의 묘미도 더해졌다. 덤덤하던 부부관계도 한결 가깝고 새로워져 살맛이 났다.
부부사이라도 서로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티격태격 하지 않고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다.
방민준·광고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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